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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꽁초 커피

담배 꽁초 커피   필자는 커피숍에 가자고 하면 망설여진다. 가급적이면 커피숍에는 가지 않으려 한다. 카페인에 약해서인지, 커피숍에서 커피나 심지어 카페라떼를 마시면 두세 시간 동안 머리가 띵하고 심장이 마구 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레몬에이드 같은 걸 마시려면 너무 달아서 못 먹겠다. (덜 달게 해달라고 주문해도 달게 준다) 그래서 커피숍에 가면 생과일주스 같을 걸 마시는데, 마땅치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믹스커피를 마시면 그런 증상이 없어서 하루 두 잔을 마신다. 그런 필자를 보고 어떤 이들은 ‘촌스럽다’라고 하는데,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세련되고, 믹스 커피를 마시면 촌스럽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이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내리는 또는 끓이는 커피’ 하면 ‘담배 꽁초 커피’ 사건이 생각난다. 1976년 서울 중심가에 있는 모 다방에서 커피 재료를 아끼기 위해, 손님이 피우고 남은 꽁초의 담배 가루를 섞어 커피를 끓인 사건이다. 주방장이 월급이 너무 적어 커피 재룟값을 횡령하기 위해 저지른 범행으로 결말났다. 하지만 항간엔 ‘커피에 담배 꽁초 가루를 넣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던가, ‘담배 꽁초 가루를 넣어 끓인 다방의 커피가 독특하고 맛있어 손님들이 몰렸다’는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사실 니코틴은 중독성이 강하지만, 독성 자체도 아주 강하다. 순수 니코틴은 극소량으로도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피우고 남은 담배 꽁초 가루를 넣어 커피를 끓였다니, 커피에 니코틴의 양이 상당히 들어갔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손님들이 그 커피에 중독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원두를 볶아 갈아서 내리는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지만, 당시엔 커피 가루를 구멍 난 통 안에 넣어 커피를 끓였다. 지금으로선 담배 꽁초 가루 커피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 이후에 다방에서는 인스탄트 가루 커피를 판매하는 게 유행하면서, 커피숍과 다방이 분리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담배 꽁초 커피 사건’ 이후 유명 설렁탕집에서 설렁탕에 커피 프림을 넣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역시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얘기와 함께 ‘그래도 프림은 먹는 거니까 담배꽁초보단 낫다’는 얘기들을 했었다.   역시 ‘먹는 거 가지고 장난 치면 안 된다’는 말은 진리다.   <묻는다칼럼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쌀과 잡곡

쌀과 잡곡   잡(雜)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가 뒤섞여 순수하지 않음’ 또는 ‘아무렇게나 막됨’이란 뜻이라고 한다. 따라서 잡(雜)이란 글자가 단어 앞에 들어가면 주(主)된 건 아니고 뭔가 부족하거나, ‘잡상인’ ‘잡 놈’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인다. 주와 잡으로 나누는 대표적인 사례가 곡식이다. 우리나라에선 주곡(主穀)은 쌀이고, 나머진 죄다 잡곡(雜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 얘기다. 요즘은 쌀보다 잡곡이 훨씬 비싸다. 주와 잡의 입장이 바뀌었다. 그 계기가 된 게 바로 ‘통일벼’의 등장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흰쌀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물론 정부미처럼, 좀 덜 희긴 하지만 값 싸고 질 낮은 쌀밥도 있긴 했다) 강원도 산골 마을에선 감자가 주식이고, 생일이나 명절에서야 흰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필자가 살았던 동네인 흑석동만 해도 도시락을 못 싸 오는 학생은 없었지만, 당시엔 실제 쌀이 없어 도시락을 못 싸 와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학생들이 있었다. 또 어떤 학생은 쌀이 없어 대신 도시락으로 감자를 쪄왔는데, 속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이 달려들어 맛있다며 빼앗아 먹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자기 도시락이라도 주면서 빼앗아 먹었어야지)   어쨌든 예전엔 쌀농사를 그렇게 많이 지었는데도 늘 쌀이 부족했다. 종자의 문제가 컸다. 키가 커서 비바람에 약하고 병충해에도 약할 뿐만 아니라, 종자 자체가 수확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개발한 종자가 통일벼였다, 통일벼는 키가 좀 작지만 병충해 등에도 강하고, 무엇보다 낱알 수가 크게 늘었다. 정부는 열심히 통일벼를 홍보하며 보급했고, 쌀 부족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 덕에 ‘혼분식 장려운동’과 ‘도시락이나 식당에 30% 이상 잡곡을 섞어는지 확인하는 검사’도 사라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통일벼의 가장 큰 단점은 ‘맛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떤 이는 요즘 서울의 일부 동남아 음식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는 ‘알량미(안남미)’가 생각난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쌀 하면 대한민국.계속된 종자 개량 등으로 어느 순간 통일벼는 자취를 감췄다.   요즘 다수의 가정에서는 잡곡밥을 먹는다. 건강을 위해서나, 밥맛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노인 일부는 아직도 흰쌀밥을 고집한다. 어릴 적 ‘흰쌀밥’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부러움 때문이 아닐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으~~ 채변봉투

으~~ 채변봉투   필자가 학교 다닐 때엔 일년에 한 번 학교에서 채변봉투를 나눠줬다. 정부가 국민건강에 적극 관여하던 시기였다.   봉투안엔 비닐 봉지가 들어 있었다. 안내 문엔 ‘깨끗한 종이 위에 변을 보고,소독저(당시엔 나무젓가락을 이렇게 칭했다)로 세군데 이상에서 변을 채취해 비닐 봉지에 넣고 묶으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채변 결과에 따라, 담임선생님이 해당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내 즉석에서 ‘회충약’을 먹였다. 앞에 나간 학들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부끄러워했다.   똥이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지만, 보이기는 왠지 부끄러운 것이기도 하다. 또한 채변을 해서 가져가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했다. 따라서 채변봉투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어떤 학생은 개똥을 넣었다가, ‘사람에게선 나올 수 없는 기생충-개똥’이란 결과가 나왔다. (농담으로) ‘디지게’ 맞았다.어떤 학생은 친구 것까지 만들어 제출했다가, 그 친구랑 같이 회충약을 먹은 경우도 있었다. 가끔은 가족끼리 한 자녀의 똥으로 다른 자녀의 채변 봉투까지 만들어, 형제까지 같이 회충약을 먹은 경우도 있었다. 또 한 학생은 ‘변비’라는 쪽지를 대신 넣기도 하고, 또 다른 학생은 껌을 넣었다가 ‘이물질’ 판정을 받아 (농담으로) ‘디지게’ 맞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 똥이 참 독하다는 걸 깨달았다.비닐로 싸고 종이로 싸도 냄새가 꽤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방에 도시락도 넣고 채변봉투도 넣어야 했으니, 참 기분이 묘했다.   요즘은 채변봉투는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 년에 한 번 (또는 봄 가을 두 번) 구충제를 복용하라는 정부의 권고가 있었다. 지금은 농사 지을 때 인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구충제(회충약)을 먹으라는 권유는 없다.   ‘채변봉투’ 좀 지저분한 생각은 들었지만, 국가가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진행했던 좋은 사업이긴 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참치회와 IMF

참치회와 IMF   참치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하면 “‘다랑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일설에 의하면 다랑어회를 팔기 위해 참치란 말을 만들어 냈다고도 한다.   참치회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대중화된 것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다. 그 전까진 국내에선 잘 먹지도 않았고, 다랑어라고 불렀다. 동원과 사조 등 원양선단들이 잡은 다랑어의 거의 전량을 수출했다.   어쨌든 참치가 대중화 된 것은 동원과 사조가 앞다퉈 참치횟집을 보급하면서부터다. 필자도 처음 참치회를 보면서 ‘뭐 이런 회가 다 있나’ 싶었다. 부위마다 맛과 생김새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에 싸서 먹고 다양한 메뉴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필자의 입맛이 싸구려라 싼(최고급은 아닌) 부위가 맛있게 느껴졌다. 필자는 질긴 결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이 없는 새빨간 부위와 약간의 기름기가 느껴지는 하얀 부위를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입 사원 시절에 팀 회식으로 참치횟집을 갔는데, 주방장이 참치 눈알을 들고 왔다. 한 마리에 두 개만 나오는 귀한 부위(당연한 얘기)라고 자랑했다. 팀장이 신입사원인 내게 권했다. 입이 짧은 필자는 참치 안구 안의 미끈한 액체를 구역질하듯 억지로 마셨다. ‘귀하긴 무슨... ㅠㅠ’   참치횟집을 가면 꼭 망설여지는 대목이 나온다, 주방장 특선이라며 주방장이 따로 추가 회를 가져오는 경우다, 이럴 때 팁을 줘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당시에 우리 부서장이 2만원을 건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금액이다. 하지만 참치회가 성행한 시기와 우리나라가 IMF 전에 흥청망청하던 시기와 묘하게 겹쳐진다. 그래서 당시엔 ‘통이 좀 크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당시 참치회는 분위기가 깔끔하고 좀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주방장들도 떼돈을 벌었다.하지만 흥청망청하던 분위기가 IMF로 사라지면서 참치횟집 인기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원이나 사조참치도 크게 줄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지만, 참치회에는 기본 단가가 있다 보니 내 돈 내고는 선뜻 가게 되지 않는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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