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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유니폼에 없는 색은?

월드컵 유니폼에 없는 색은?   어제(20일) 월드컵 대회가 끝났다.여러 경기를 보다보니 선수들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뚱딴지같은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 유니폼엔 왜 회색이 없지?’   흔히 보고 생각하는 무지개색 ‘빨주노초파남보’와 ‘흑백’ 모두 유니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실생활에선 회색 옷을 자주 입는다.그런데 유독 월드컵 선수들의 유니폼엔 회색이 없다! 예전에도 못 본 것 같다.(골키퍼가 가끔 은회색이나 밝은 회색을 입는 경우는 있었던 것 같다)대개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니폼엔 국기에 사용되는 색을 이용한다. 따라서 국기에 회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기 안의 그림이나 문장에 아주 약간 들어가는 건 제외)   그래서 회색이 국기에 없는 이유를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국기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멀리서도 아군과 적군을 쉽게 구별하는 것"인데, 국기가 회색이라면 흐린 하늘이나 연기 속에 깃발이 묻혀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란다. 특히 유니폼은 눈에 강렬하게 띄어야 하므로, 원색(빨강, 파랑, 노랑)과 확실한 무채색(흰색, 검은색)의 대비를 기본으로 한단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유니폼에 갈색(Brown)도 없는 것 같다. (국기에서도 못 본 것 같았다)또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실제 이번 월드컵의 국가대표 선수들 유니폼에 갈색은 없다고 한다.국기에도 스리랑카를 제외하면, 갈색은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극히 일부 제외) 전통 문장학에서 갈색은 '흙' ' 가난' '쇠퇴' 등 다소 무겁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잔디밭(초록색) 위에선 칙칙하고 몸이 무거워 보이는 시각적 효과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제미나이는 보라색과 분홍색을 합쳐, 4대 기피 색상이라고 추가했다.하지만 한국팀이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보라색 유니폼을 입었고,(무궁화를 연상시킨 색이라고 하는데, 처음 본 것 같다) 여자 월드컵에선 가끔 분홍색 유니폼을 입는다. (제미나이도 완벽하지 않아서, 무조건 믿으면 안된다) 그만큼 흔하지 않다는 의미일 게다.   월드컵 대회가 끝나서 아쉬운가, 별 걸 다 쓰고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방통대에 가는 이유

방통대에 가는 이유   방통대가 1982년 2월 15일에 설립됐으니, 벌써 44년이나 지났다. 당시엔 대학에 못 간 사람들이 많았고, 처음엔 그들을 위한 교육에 치중했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 방통대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진 않았다. 어떤 정치인은 “밥통대나 가라”라며 조롱했다가,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방통대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특히 학부의 경우 성적 미달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일반 대학에 진학을 못 해서, 할 수 없이 방통대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위의 이유를 제외하면, 요즘은 대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이유로 다닌다.   우선 학구열이 높은 은퇴자들이다.노인대학(요즘은 실버 또는 시니어 아카데미라고 한다) 갈 바엔, 방통대에 가겠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알아서 공부하고 연구한다. 방통대의 수만 권의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을 교보도서관 앱 등을 통해 무료로 대출해 볼 수 있다. 과제물 작성이나 개인 연구를 할 때 유료 논문 플랫폼(DBpia, RISS, KISS 등)의 학술 자료와 논문을 전액 무료로 다운로드하고 열람할 수 있다. 또한 정식 국립대학교 대학생(모바일 학생증 발급)으로서, 전국 거점 국립대(서울대, 부산대, 경북대, 충남대 등) 도서관 및 열람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두번째는 전공 교육과 학위가 필요한 사람들이다.필자의 처제는 경제학 석사로 KDI에 재직하다, 아들 키우느라 퇴직했었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같이 공부하겠다며 평소에 관심이 있던 유아교육을 전공하기 위해 방통대에 진학했다. 그 아들의 수능이 끝나면서, 유치원 선생님으로 취업했다. 지금도 힘들지만, 만족스럽게 잘 다니고 있다.   세번째가 중요한데, 중소기업 사장이나 직원들이 회삿돈으로 입학하거나 프리랜서 또는 강사들이 재학하는 경우다. 특히 영상이나 디자인 또는 설계나 컴퓨터 등과 관련된 직종들이 많다.재학생이 되면 위에 언급한 혜택은 물론, 연간 최소 150만 원 이상 투입되는 <MS오피스 + 노션 + 캐드> 최신 버전은 모두 무료에 어도비만 60%나 할인가로 이용할 수 있다.오프라인에서도 정식 대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학생 할인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 맥북, 갤럭시 탭 등을 정가보다 약 10~20%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고, 신학기 이벤트 때는 사은품 혜택도 동일하게 받는다.   게다가 방통대 학생들은 모두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궁(경복궁 등), 일부 박물관 및 뮤지컬 등 문화 공연에서 대학생 할인을 받고, 심지어 KTX 및 SRT 청소년·대학생 특가 할인도 대상이 된다.   등록금은 원래 학기당 35만원이지만, 한 과목만 등록하면 최소 금액인 학기당 10만원 정도만 내면 학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등록만 하고 스스로 유급되거나 학과를 바꿔가며, 평생 ‘학생’ 회원권으로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럼 방통대는 어떻게 이런 장사(?)를 할 수 있을까?재학생 수가 10만 명에 이르러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 년이면 수 백 억원의 등록금에, 국가 지원금도 받는다. 또한 재학생과 졸업생 수가 많아서, 정치권에서도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슬슬, 방통대에 관심이 커지지 않는가?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일본 인프라의 한계

일본 인프라의 한계 한국과 일본을 여행해 본 외국인이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일본은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이 너무 복잡하고 불편하고 비싸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은 지금도 협궤 철도가 많기 때문이다.일본은 1870년대 근대화 시기, 철도 초기 건설 당시 비용 절감과 빠른 완공을 위해 국제 표준(1,435mm)보다 좁은 1,067mm의 협궤를 선택했다. 궤도가 좁다 보니 열차의 크기와 무게에 제한이 생겨, 대량 운송이나 고속 주행에서 표준궤에 비해 불리한 점이 많다.뒤늦게 표준궤로 바꾸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이미 전국에 깔린 방대한 노선과 터널, 교량, 역사 등 관련 시설을 모두 개조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이로 인해 지금도 일본 JR 화물은 국제 표준인 20피트나 40피트 컨테이너를 그대로 싣고 달리기 어려워, 자체 제작한 12피트 소형 컨테이너를 주로 사용한다. 이렇게 국제 규격 컨테이너를 일반 철도로 운송하는 데 제약이 있어, 별도의 화물 열차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지하철 역시 표준괘와 협괘를 같이 사용하면서, 복잡하고 불편하다.일본의 지하철은 도시마다, 혹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노선이 만들어진 시기와 '직결 운행(서로 다른 회사의 노선을 연결해 달리는 것)' 여부에 따라 궤간을 결정했다. 도쿄 메트로의 긴자선, 마루노우치선처럼 초기 건설된 노선이나, 사철(민간 철도)과 연결해야 하는 노선들은 표준궤를 사용한다. 반면 일본의 국철(현 JR)이 협궤를 사용하기 때문에, JR 노선과 선로를 공유하거나 열차를 그대로 통과시켜야 하는 노선들은 협궤를 채택했다. (예: 도쿄 메트로 치요다선, 토자이선 등) 게다가 운영 주체가 서로 다르고 환승의 개념이 없다. 따라서 환승 시 별도의 운임을 지불해야 하는 등, 불편하기 짝이 없다.이렇게 일본 철도는 표준궤와 협궤를 병행사용 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일제 강점기 때 왜 일본은 조선에 저렴한 협궤가 아닌, 표준궤를 처음부터 깔았을까? (극히 일부 구간 제외)운 좋게도 첫 철도인 경인선 부설권을 얻어낸 사람이 미국의 개발업자 제임스 R. 모스(James R. Morse)였기 때문이 크다. 미국은 자국에서 표준궤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경인선도 자연스럽게 표준궤로 설계하고 미국산 철도 자재와 기관차(모굴형 증기기관차)를 들여왔다.이후 일본은 본국처럼 협궤를 고려했지만, 이미 경인선이 표준궤로 놓인데다 향후 중국(만주)으로의 진격까지 계획해서 표준궤를 선택했다. 당시 중국과 만주 일대의 철도는 이미 표준궤로 건설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쟁 물자와 군대를 대량으로, 그리고 빠르게 만주 전선으로 보내려면 수송력이 큰 표준궤가 필수적이었다. 즉 처음부터 일본은 대륙 침략을 염두에 두고, 조선을 침략하고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당시 일본이 표준궤로 건설한 덕에, 해방 이후 한국 철도가 그대로 발전하는 바탕이 되었다. 정작 일본 본국은 협궤 철도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그만큼 ‘국가 산업 경쟁력의 약화’에서 기인한고 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인프라에 근본적으로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며칠 전 글을 올렸던 100V 전력, 디지털화의 실패, 그리고 ‘협궤철도’다. 이를 우리나라와 대비하면, 일본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게 입증된다.   미래를 위해 바꾸지 못하고 안주했던 ‘협궤 철도’나 이전에 언급했던 ‘220V 승압 실패’로, 지금도 일본 산업은 많은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고 있다. 일본이 쇠락하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한지 ① - 황제가 애용한 종이

한지 ① - 황제가 애용한 종이   그동안 유럽의 문화재 복원 시장은 일본의 전통 종이인 '화지(和紙)'가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 복원 학계가 한지의 압도적인 우수성에 주목하면서, 2015년 교황 요한 23세의 애장품인 지구본을 복원하는 데 전통 한지를 채택했다. 이탈리아 산업연구센터 등의 실험 결과, 한지는 잘 찢어지지 않고 변형이 적어 "최소 8,0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탁월한 판정을 받았다.   사실 한지는 오래전부터 세계 최고의 종이로 인정받고 있었다.중국 송 원 명 청 왕조 동안 황제와 황실은 물론 관리와 학자들까지, 한지를 최고로 쳤다. 서예와 그림에 미쳐있던 송나라 휘종은 고려지(한지)를 매우 아꼈으며, 당대 중국 문인들은 한지를 일컬어 "누에고치로 만든 것처럼 희고 매끄러우며, 다듬이질을 해 앞뒤가 모두 거울 같다"고 극찬할 정도였다.송나라의 대표 문인 소동파(蘇東坡)도 “종이의 성질이 단단하고 부드러워 서화(글과 그림)를 쓰기에 가장 좋다. 이것은 중국에는 없는 물건이다."라고 극찬했다. 청나라 건륭제는 조선 종이의 매끄러운 특성을 좋아해, 황실에 보관 중이던 조선지로 시를 쓰고 낙관을 남기기도 했다.   오죽하면 1221년 원나라는 고려와 외교 관계를 맺자마자, 가장 먼저 종이 10만 장이나 요구했다. 원나라 황실은 황제의 칙서를 쓰거나 중요 문서를 인쇄할 때 반드시 고려지(한지)를 고집했는데, 희고 매끄러우며 두터운 질감이 황실의 권위를 세우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종이를 발명한 국가이고 대나무로 만든 '선지'가 있었지만, 한지의 기술력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었다.이렇게 한지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며, 지금 최고 명품급의 대우를 받았다.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에서 한지는 사실상 현금이나 황금처럼 통용되는 자산이 되었다. 명나라 초기엔 조선의 종이 수십 장이 황금 한 돈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었는 기록도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의 고위 관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로비 물품이 바로 한지였다.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한지를 챙겨가면, 현지 고관대작들이 서로 얻으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 중국 문인들 사이에서는 "조선 종이를 얻는 것이 보물을 얻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한지는 국가 전략 물자가 되었다. 당연히 정부가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조선지(한지)를 위해 국가기관을 세웠다. 세종 때 (세종대왕은 여기서도 등장한다) 집현전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책을 펴내기 시작하면서, 종이의 대량 생산과 품질 개량을 위해 조지소(造紙所)를 세웠다. (세조 때 조지서로 격상됨) 종이를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깨끗한 물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조지서는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세검정 계곡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   물론 한지에도 등급이 있었다.용도와 두께 그리고 도침(다듬이질) 등으로 결정하는데, 가장 난이도가 높은 건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공식 외교 문서의 종이인 표지(表紙)였다. 그다음이 어람지 교지 실록지 등 궁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한지가 있었고, 관청에서 행정 문서를 쓸 때 사용한 자지(姿紙)와 선비들이 시를 쓰거나 편지를 보낼 때 쓰던 종이인 시전지(詩箋紙) 등도 고급 한지에 속했다.   이렇게 당시 세계 최고의 종이를 생산했다 건, 그만큼 최고의 기술이라는 의미였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민초들의 큰 희생이 뒤따랐다. (다음 편에...)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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