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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탁칼럼 | 세종대왕의 실수

26-06-0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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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실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사진)가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했다해외에서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올릴 것이란다투자 대비 수익으론 최고일 듯하다필자도 봤지만많은 재미와 감동을 준 영화다모두 알듯이 영화는 참 가슴 아픈 어린 임금 단종의 이야기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원래는 그런 비극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단종은 적장자(문종)의 맏아들로 태어나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적장자 중 적장자라는 불가침의 정통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버지 문종이 재위 불과 2년만에 사망한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문제는 단종의 할머니 소헌왕후는 세종보다 이미 먼저 사망했고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직후 사망했다는 점이다이로 인해 즉위 당시 성년에 이르기까지 수렴청정을 담당하거나어린 임금을 보호해줄 왕실의 웃어른(대왕대비·왕대비)이 존재하지 않았다이게 가장 큰 비극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종친이 종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 왕권을 위협할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며 "종친은 절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철칙을 세웠다이를 위해 왕자의난’ 등에서 이방원을 왕에 오르도록 적극 도왔던 처남 민무구·무질 형제를 제거하고왕권에 방해될 만한 다수의 공신들까지 제거해버렸다.

 

하지만 세종은 아버지 태종처럼 모질지 못했다또한 세종 자신이 뛰어났던 것처럼 아들들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아들들을 너무나 예뻐했다.

 

맏아들 문종은 총명하고 인품이 뛰어났다. 1442년 세종이 병상에 눕자 문종은 이 시기에 대리청정을 했는데너무 열심히 해서 건강했던 몸이 상했다. (훈민정음 창제나 측우기 등 많은 세종의 업적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이로 인해 즉위하면서부터 질병에 시달리다일찍 생을 마감했다.

차남 수양대군 역시 총명했다특히 무예와 병법 등 문무에 능하여세종의 총애를 샀다이에 1443년 11월 17세종은 수양대군에게 국가 제사 제도를 정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는데이는 국정의 핵심을 왕자의 손에 넘긴 격이되었다.

삼남 안평대군은 서예와 시문(詩文), 그림가야금 등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꼽혔다조선전기 문인인 최항(14091474)은 시문집 <태허정집>에서 중국 조정의 선비들이 또한 글씨 한 장씩만 얻어도 가첩을 만들어 보배로 사랑하고 모방하여 비교하려고 했다고 소개할 정도였다.

넷째인 임영대군은 부왕(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銃筒제작을 감독했고큰형(문종즉위 후에는 화차를 제작했다왕손이면서도 근검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특히 세종의 총애가 남달랐다.

여섯째인 금성대군은 강직한 성품과 죽기를 각오한 충성심으로 이름을 남겼다금성대군은 유배지인 경상도 순흥에서 의병을 일으켜 단종 복위를 계획했다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막내인 영응대군 역시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고 음률(音律)에도 해박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영응대군은 세조 때 <명황계감>을 한글로 번역했다. <명황계감>은 당 현종(재위 712~756)의 이야기를 적고고금(古今)의 시를 덧붙여 엮은 책이다.

 

이렇게 자식들이 모두 뛰어나니 (딸들도 뛰어났다고 한다), 세종은 너무 예쁘고 기특해 어찌할 줄을 모르며 가까이했다.

 

하지만 이는 대군들의 세력을 키우는 결과를 나았다이에 신하들은 "반역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며 상소를 올렸지만세종은 "내 아들들은 다르다"며 이 경고를 덮어버렸다고 한다이로 인해 수양대군 주변에는 무인들이안평대군 주변에는 관료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만약 세종이 종친을 멀리하고 신하들의 우려를 받아들였다면수양대군이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고 계유정난이라는 비극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성군 세종대왕’.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좋아하게 되는 건지그의 아들들 역시 너무 똑똑하다보니 내치지 못하고 가까이 한 게 결과적으론 큰 실수로 돌아왔다.

아들 문종이 일찍 세상을 뜰 것을 어찌 알았겠나 싶지만장손자 단종의 비극을 저세상에서 바라봐야만 했던 할아버지 세종의 심정은 어땠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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