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기와 고약 ① - 종기
종기와 고약 ① - 종기 필자가 어렸을 적엔 종기가 흔했다. 필자도 여러 번 고생했다. 당시 가장 손쉬운 치료법은 충분히 곪을 때까지 기다렸다 손으로 짜는 것이었다. 아프긴 해도, 대개 이렇게 낫고 끝났다. 옛날엔 종기가 정말 많았는데, 우선 깨끗하지 못한 환경 탓이 컸다. 목욕도 자주 안 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지 않았다, 더구나 영양상태도 지금만 못하여서, 면역력이 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종기는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아니 어찌 보면 임금님들이 더 고생을 많이 했고, 종기로 죽기도 했다. 그 이유로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복장 때문이었다. 일은 많은데, 비단과 무명 등으로 옷을 겹겹이 입었다. 하지만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해도, 한 나라의 왕이 옷을 벗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목욕을 자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세균이 증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다. 특히 당시 왕들은 잘 먹지만 운동은 하지 않아, 당뇨도 많고 면역력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항생제도 없고, 발달된 외과적 수술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 네 명이 종기로 인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제5대 문종은 즉위 전부터 종기로 고생했는데, 세종의 삼년상을 치르며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등에 난 거대한 종기(등창)가 악화되어 재위 2년 만에 승하했다. 종기만 치료했어도, ‘왕과 사는 남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제9대 성종은 배와 등에 난 종기가 원인이 되어 38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성종이 종기만 잘 치료했어도, 연산군이란 폭군은 없었을 수도 있다.제17대 효종은 얼굴에 난 종기를 침으로 찔러 고름을 뽑아내려다, 혈관을 건드리는 의료 사고로 인해 과다출혈로 급서했다. 당시 치료를 맡았던 어의 신가귀는 노안으로 눈이 침침하고 수전증으로 손이 떨렸다고 한다. 결국 침을 잘못 찔러 침 끝이 혈관을 깊게 찔렀고, 효종은 쏟아지는 피를 멈추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으로 신가귀는 교수형에 처해졌다.제22대 정조는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과 과로로 인해 등에 종기가 자주 났다. 결국 이 종기가 전신으로 퍼지고 혼수 상태에 빠지면서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종기를 잘 스렸다면, 조선 후기 세도정치도 없었고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이외에도 제7대 세조는 피부병으로 아주 고생하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야사에 의하면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나 "내 아들(단종)을 죽였으니 네 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세조의 몸에 침을 뱉었고, 그 자리에 종기가 생겨 온몸으로 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 고약을 사용하면 되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종기가 흔했던 옛날에 고약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효과있는' 고약은 이 당시의 약이 아니라 의외로 근세에 들어와 만들어진 약이다. 고약에 대해선 다음 편에...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종기와 고약 ② - 고약
종기와 고약 ② - 고약 옛날엔 위생상태도 좋지 않고 몸나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종기나 염증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빈대나 벼룩 같은 해충때문에 더욱 흔해졌다.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따라서 어느 지역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를 고치기 위한 약들을 찾고 개발하려 애썼다.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사용했으므로, 제조법은 지역이나 시대별로 달랐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한방 또는 민간요법 형태로 있었다. 하지만 약효가 확실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이 당시의 이런 모든 약을 ‘고약’이라고 통칭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약(국어사전에 ‘주로 헐거나 곪은 데에 붙이는 끈끈한 약’이라고 표현하는 약)은 ‘이명래 고약’에서 비롯됐다. 필자가 이 고약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살 쯤에 목욕탕에 갔다가 온몸에 종기가 생기면서였다. 명함보다도 큰 종기가 10개 정도 생겼는데, 피부과를 갔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때 누군가의 얘길 듣고 이명래 한의원에 가서 고약을 사다 붙였다. 거짓말처럼 일주일만에 깨끗이 나았다. 그래서 이명래 고약에 대해 알아 봤다.원천 기술은 1895년 충남 아산에 한국 선교사로 들어온 프랑스인 드비즈 신부에 의해서다. 중국에서 체한의학을 배운 그는 한국인을 위해 고약을 만들었는데, 어리지만 영특하고 독실했던 이명래 선생에게 그 비법을 전수하였다.‘이명래 고약’은 그의 나이 불과 열여섯 되던 1906년에 개발에 성공하여, 종기 환자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엔 단순히 종기뿐만 아니라. 지금도 난치병으로 여겨지는 골수염, 결핵성 임파선염, 관절염을 비롯하여 온갖 염증에 효험이 뛰어난 처방들을 개발하여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1920년 서울로 올라와 중림동에 고약집을 열었는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이후 ‘이명래 고약’은 ‘명래제약(주)’과 ‘명래한의원’ 두 갈래로 전승되어왔다. 약국에서 판매되던 ‘이명래 고약’은 이명래 선생의 막내딸인 이용재 여사(2009년 타계)가 운영하던 ‘명래 제약’ 즉 공장에서 대량 제조한 제품이다. 필자도 어릴 적 종종 사용해봤지만, 효능이 그리 뛰어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서 제조 시판 중인데, 요즘 제품은 효능이 어떤지 모르겠다.‘명래한의원’은 이명래 선생의 사위인 이광진 씨에게 물려주었는데, 이광진 씨는 정식으로 한의를 전공한 사람이었다. 바로 이곳의 고약이 정통으로 만들어진 곳이었고, 정말 효능이 뛰어났다. 그는 고약 이외에도 뛰어난 의술로 환자들이 꽤 많았다. 이후 그의 사위인 한의사 임재형 원장이 장인의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했는데, 지금은 명맥이 끊긴 것 같다. 과거의 좋은 기억때문일까.항생제나 외과적 수술이 없이도 훌륭하게 치료하는 고약이 사라지지 않고 계승되길 바랄 뿐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수도권 살아서 전쟁 피해가 적다?
수도권 살아서 전쟁 피해가 적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그중 총 4조8000억원을 투입해,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1인당 10만~60만원의 피해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한다.그런데 지역과 소득 수준별(건강보험료 기준)로 가구원 1인당 10만~60만원씩 차등 지원한다. 차상위 한부모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수도권 1인당 10만원, 비수도권은 1인당 15만원, 인구감소지역의 경우 1인당 20만(우대지원)~25만원(특별지원)을 준다. 그런데 이것 참 이상하다.분명 전쟁피해지원금이라며, 주거 지역별로 차등은 둔단다.만약 20대 청년이 수도권에서 원룸에 살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한다면 10만원 준다. 세종시에 사는 40대 공무원이 소득하위 70% 해당한다면, 가족이 모두 15만원씩 받는다. 그런데 시골에 살며 자기 땅에 농사짓는 70대 노인은 모두 기본으로 20~25만원씩 받는다. 위 세사람들 중 누가 전쟁피해를 가장 크게 볼까?수도권에 사는 20대 원룸 청년?세종시에 사는 40대 자가 공무원?시골에 사는 자기 땅 소유 70대 농부? 필자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한 평가를 못 하겠지만, 적어도 수도권에 사는 청년이 전쟁의 피해를 가장 적게 받을 것이란 생각은 안 든다. 또한 그 청년이 시골에 사는 70대 노인보다 전쟁피해지원금을 50% 이상 적게 받아도 합리적이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해괴한 차별을 누가 만들었나?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며 공정을 외치는 정부가, 수도권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피해지원금을 적게 받아도 된다는 게 너무나 황당하다. 어차피 소득으로 지급 여부를 나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주민들이 지원금을 더 적게 받아도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고,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야당은 도대체 뭘 하길래, 이런 걸 지적질도 못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조속히 재고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정동영, 간첩인가?
정동영, 간첩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늘 ‘국익’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가는 장관이 있다. 바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다. 그동안 정 장관은 통일부 장관이라는 자리에서 북한 대변인인지, 북한 스피커인지, 김정은 추종자인지 모를 발언들을 당당하게 해 왔다. 그런데 이젠 그 수준을 넘어, ‘국익 자해’까지 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정동영 장관이 지난달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영변과 구성, 강선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미 측은 여러 채널을 통해 민감 정보가 외부에 공유된 데 대해 강하게 항의했고, 정보 공유를 축소하겠다는 의도(intent)가 한국 정부에 전달됐다고 한다. (통일부 측은 미국 정보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 역시 신뢰할 수 없다)우리 대북 역량 중 감시정찰은 미국 의존도가 큰 분야인데, 북한 관련 위성 정보 등 미 측 정보 공유가 제한될 경우 대북 감시 태세와 직결된다. 이미 정동영 장관의 편향된 시각은 인권 문제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지난 3월 26일,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방침을 밝히며 “북한이 대표적인 적대시 정책으로 보는 것을 우리가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고 강변했다. 이는 보편적 인권이라는 인류 가치보다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우선시한 태도다. 특히 천안함 폭침 16주기를 맞이한 시점에서도 남북 관계를 굳이 ‘한조(韓朝) 관계’라는 북한식 표현을 사용해, 유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래도 반성할 줄을 모른다)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와 NSC 상임위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행태도 가관이다. 그는 “한미연합훈련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며 사실상 훈련 중단이나 조정을 압박했다. 이쯤 되면 간첩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그가 추구하는 통일부는 ‘적화 통일부’가 아닌가 싶다.이재명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정동영 장관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공방의 문제가 아니다. 정 장관 스스로도 자신의 신념이 국익과 충돌할 때 공직자가 택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 책임 있는 사퇴뿐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제2차 산림녹화 사업이 필요하다
제2차 산림녹화 사업이 필요하다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온 주민들은, 오자마자 보이는 모든 것에 놀란다. 시간이 좀 지나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또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숲이 울창한’ 산이다. 북한에도 산이 많지만, 거의 대부분 민둥산이다.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민둥산이 참 많았다. 오죽하면 4월 5일을 식목일이자 공휴일로 지정해, 전국민이 나무를 심었다. 필자도 동원되어 나무를 심은 기억이 있다. 수 십 년의 노력 끝에 ‘산림녹화’에 성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란 타이틀을 받게 되었다. 과거 해방과 전쟁을 거친 대한민국에서의 산은 휴식의 공간이 아닌 '수탈과 생존'의 현장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무분별한 벌목, 전쟁의 포화, 그리고 무엇보다 지독한 가난이 산을 망가뜨렸다. 연탄이나 가스가 없던 시절, 북한처럼 산의 나무는 추운 겨울에서 유일한 땔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무가 사라진 산은 비만 오면 흙탕물을 쏟아내는 홍수의 진원지가 됐고, 등산은 꿈도 못 꾸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유엔의 도움을 요청했다. 유엔개발계획(UNDP)는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치산녹화" 기술을 전수하고, 대규모 자금과 전문가를 파견했다.당시에 UNDP는 여러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고 나무를 심었지만, 활착율이 10%도 안됐다. 이에 비해 한국은 100%에 가까운 활착률을 기록하자, UN 조사단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본 그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흙 한 줌 없는 포항 영일지구의 생(生) 돌산에 사람들이 직접 흙을 지고 날라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풍에 쓰러질까 봐 나무 하나하나에 지지대를 세운 그 '독한 정성'은 서구 전문가들의 상식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런 성공의 배경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다.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지원과 관리 등이다.일단 척박한 민둥산에서도 잘 자라는 아카시와 리기다소나무부터 심었다.또한 정부는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치산녹화 10년 계획'을 시행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지방을 시찰할 때, 산이 조금이라도 붉게(벌거숭이로) 보이면 해당 지역 군수를 질책할 정도로 집요했다.한편에선 연탄을 보급하며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나무를 베었다간 형사처벌 되었다.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도 중요했다. 그래서 경상도 공무원은 전라도로, 전라도 공무원은 경상도로 보내 서로의 성과를 감시하게 했다. 이렇게 산림 녹화가 완성되었다,예전에 심었던 아카시 나무는 이제 유실수나 목재수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나무를 많이 심다 보니 화재와 재선충에 너무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전국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산불과 재선충의 피해가 막심하다. 어떻게 가꿔온 숲인가?이참에 산불과 재선충을 예방하는, 제2차 산림녹화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탈원전’했더라면...
‘탈원전’했더라면... 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선 가장 무능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탈원전 정책이었다. 2017년 6월 19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도 중단시켰다. 이렇게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생태계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6년 12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던 한국전력은 탈원전 여파와 고유가가 겹치며, 부채가 2023년 말 기준 약 200조 원 돌파했다.원전의 빈자리를 재생에너지와 발전 단가가 비싼 LNG로 대체한다고 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LNG 수입액은 약 567억 달러(약 70조 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무역 수지 악화의 주범이 되었다. (kWh당 원전 약 50~60원라면 LNG 약 150~200원인데, 연료비 급등 시 격차는 더 커진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거 하나만 잘했던 것 같다) 이재명 정부에선 추가 원전도 계획하고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 계획대로 됐다면 우리나라는 엄청 재앙을 맞이할 뻔했다. 이번 이란전을 계기로, LNG 수급과 가격 상승을 보면 더욱 실감이 난다. 지금은 AI와 반도체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시대다. 이는 곧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값비싼 LNG로 충당이 가능할까?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근시안적 발상에 분노가 치민다. 독일의 사례가 이를 입증해 준다.독일은 메르텔 총리 시절, 원전을 폐쇄하고 러시아의 천연가스(PNG)를 가스관을 통해 엄청나게 싼 값으로 공급받았다. 2021년 당시 독일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55%에 달했다. 값싼 전기료와 화학소재를 바탕으로, 관련 산업들이 부흥했고 호황이 지속됐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칭송도 이어졌다.하지만 2022년 2월, 러-우 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는 독일의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이 얼마나 사상누각이었는지 나타났다. 가스관이 잠기자 독일의 전기료는 한때 평시 대비 10배 이상 치솟았고, 독일은 졸지에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독일 화학의 상징 BASF는 2023년 루드비히스하펜 공장의 일부를 폐쇄했고, 폭스바겐은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공장 폐쇄를 검토 중이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주장대로 LNG와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했다면, 한국은 지금 제2의 독일이 되었을 것이다. 에너지는 복지가 아니라 생존이며, 경제다.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할지, 독일처럼 제조업 공동화(Hollowing out)를 겪을지는 지금 우리가 원전 스위치를 얼마나 자신 있게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