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규모에 따른 세수는?
성과급 규모에 따른 세수는? 반도체업계의 성과급 논란이 거세다.SK하이닉스의 경우 영업이익의 10%, 직원 1인당 7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과급이 예상된다는 보도도 있다.삼성전자 노조는 이에 질세라 영업이익의 15%를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이 시간 현재 노사간 마지막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성과급이 많이 지급될 경우 비용으로 잡히기 때문에, 법인세가 줄면서 세수도 줄어들어 정부 입장에선 손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순간, 응?좀 이상하다. 기자가 뭔가를 착각한 모양이다.성과급만큼 법인세는 줄지만, 그만큼 근로소득세는 늘어난다. 그 순간 실제 전체 세수는 정말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그래서 AI를 이용해 계산을 해 봤다. 일단 정해진 게 없으므로, 몇 가지 가정을 해야 한다. 성과급을 받는 직원 수 5만 3천명, 올해 영업이익 230조원, 영업이익의 11%(협상의 결과라고 가정)를 성과급으로 지급 등로 가정했다. 계산해 봤다.우선 가정한 영업이익이 230조 원이므로, 성과급 총액(11%)은 25조 3,000억 원이다.성과급 해당 직원 수가 5만 3,000명이므로, 인당 평균 성과급은 25조 3,000억 원 ÷ 5만 3,000명 ≒ 4억 7,735만 원이 된다.여기에 직원들의 기존 평균 연봉(약 1억 2,500만 원)에 이 성과급을 더하면, 인당 평균 총 연봉이 약 6억 원에 육박한다. 성과급만큼 법인세는 줄어든다.성과급으로 나간 25조 3,000억 원이 비용 처리되므로, 삼성전자가 낼 법인세 세율 27.5%(국세 25% + 지방세 2.5%)를 적용하면 25조 3,000억 원 × 27.5% = 6조 9,575억 원. 즉 감소하는 법인세는 약 7조원이다. 하지만 근로소득세는 늘어난다.연봉은 3억원이 넘고 평균 6억 원 수준이고 10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이 없다면, 근로소득세 세율은 40% + 지방세 4.0% = 44.0%이다. 국세(소득세)는 25조 3,000억 원 × 40% = 10조 1,200억 원 그리고 지방세는 25조 3,000억 원 × 4% = 1조 120억 원. 도합 11조 1,320억 원에 달한다. 즉 줄어드는 법인세보다 늘어나는 근로소득세가 4조원 이상이나 된다.위와 같은 경우, 성과급이 늘어날수록 세수도 늘어난다는 의미다.(위의 가정은 필자의 사견이고, 실제 숫자와 노사협상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지만 ‘성과급이 많아질수록, 정부 입장에서 세수는 어떻게 될까’에 대한 의문은 풀렸다.설마 정부가 세수를 늘이려고 성과급을 더 많이 줘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점쟁이 배틀 <운명전쟁49>
점쟁이 배틀 <운명전쟁49>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운명이나 점에 관심이 많았다. 과거엔 점을 쳐서 중요한 국정을 결정한 경우도 있을 정도다. 지난 2월 11일 디즈니+에서 ‘점쟁이 배틀’이라 할 수 있는, 리얼리티 게임쇼 형태의 서바이벌 ‘운명전쟁49’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워낙 소재가 독특해서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꽤 신박했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 49인의 운명술사(무당·사주·타로·관상 등)가 문제를 풀며 생존해 가는 형식이다. 1라운드에선 20가지 문제를 통해 49명 중 20명을 추렸다.문제가 쉽진 않다. 죽은 사람의 사인을 맞추거나, 5명 청년 중 서울대 재학생을 모두 맞추는 식이다. 사인을 맞추는 경우 가장 근접한 구술을 하는 사람을 평가해 선정하고, 서울대생을 맞추는 경우는 맞춘 사람이 생존자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버튼을 먼저 누른 7인에게만 기회를 주고, 답이 같을 경우 먼저 누른 사람이 생존한다. (이런 방식에 대해선 좀 아쉽다고 생각한다)점쟁이들은 방울을 흔들어 신을 부르거나 노트북으로 사주를 풀거나 타로 카드를 뽑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 어떤 경우엔 소름 돋도록 정확해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참가자 49명의 경우 내로라하는 점쟁이들로 추렸을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 나타나는 것만 보면 굉장한 것 같지만, 편집된 것까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정답자가 적은 걸 알 수 있다. 한편 2라운드에선 20명이 각자 짝을 만들어 서로의 점을 쳐주는 형식이다. 두 명 중 한 명은 탈락해야 하는, 물러설 수 없는 배틀이다. 무당들 말로는 무당끼리 점을 보는 건 아주 금기 시 되는 일이라 한다.하지만 실제 해보니 꽤 재미있었고, 그들의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그들도 사람이고, 무당도 참 힘든 직업이다. (현재 2라운드 진행 중임)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큰 한계가 있다. 바로 ‘미래’에 대한 문제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점을 보러 갈 때엔 미래가 궁금해서 간다. 과거나 성격을 맞추러 가는 게 아니다. 즉 가장 중요한 진짜 실력은 미래를 맞추는 것인데, 참가자들이 미래를 맞추는 능력을 알 수가 없다. 필자는 점에 관심이 많아 한때 명리학 등을 독학하기도 하고, 한 때 점을 보러 다닌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점을 보지 않는다.아무리 용하다는 점쟁이라도, 미래를 제대로 맞추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쟁이가 미래의 일을 소 뒷걸음질 치듯 어쩌다 한 번 맞추면, 졸지에 ‘용하다’고 떠든다. 어쨌든 ‘운명전쟁49’는 재미로는 볼 만 하다.또한 점쟁이들의 희노애락도 느낄 수 있다.필자도 일반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점쟁이들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 인정한다. 하지만 미래를 제대로 맞히는지 알 수 없는 만큼, 너무 신봉할 건 없다고 본다.필요하면 무료로 편하게, 제미나이 같은 AI에 생년월일시를 넣고 보는 걸 추천한다. 궁금한 점까지 친절히 상담해 준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금과 청은 누구의 역사인가?
금과 청은 누구의 역사인가? 얼마 전에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 출신’이라는 얘길 들었다.신라가 망할 즈음에 신라인(마의태자 또는 왕실 주요 인사라는 설도 있다)들이 만주로 건너가 여진인들과 함께 세운 나라가 ‘금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호도 신라의 주요 성씨인 금(金)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 「세기(世紀)」에는 금나라 시조에 대해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函普)인데, 처음에 고려(高麗)에서 왔다."고 적었다. 당시 중원 왕조들은 한반도의 국가를 통칭하여 '고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니, 신라를 고려로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에서는 금나라의 국호인 '금(金)' 자체가 신라의 국성인 '김(金)'씨에서 유래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완안부의 시조 함보가 신라에서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금나라와 청나라(후금)의 뿌리가 신라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송나라 사신으로 여진에 다녀왔던 홍호(洪皓)가 쓴 『송막기문(松漠紀聞)』에는 "여진의 추장은 신라 사람이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봐서, 당시 여진족 내부에서도 그들의 지배층이 신라 계통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또한 발해가 멸망한 후 흩어졌던 여진족이 다시 뭉친 금나라의 건국 초기, 금나라를 세운 아구다는 발해인들에게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女眞渤海本同一家)"라고 선언했다. 그들 사이에 공유되는 혈통적 공감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주장이었다. 그러면 금나라도 발해처럼 우리 역사일까? (중국은 발해는 물론 고구려도 그들의 역사라고 주장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역사학자들은 발해와 금나라는 다르다고 한다.우선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명확한 '고구려의 계승자'다. 대조영을 필두로 한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을 주도했으며, 스스로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고구려) 국왕'임을 명시했다. 또한 고구려 특유의 문화와 관제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비록 피지배층인 말갈(여진)족이 다수였으나, 이들은 고구려 시대부터 한 울타리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이들이었으므로, 발해는 고구려의 강역과 정신을 계승한 한국사의 당당한 한 축(남북국 시대)으로 정의한다.하지만 금나라는 좀 다르다. 금은 신라의 혈통적 뿌리는 인정할 뿐, 국가 정체성은 '여진(완안부)'에 두었다. 이후 여진 고유의 풍습을 유지하면서도 점차 중원(송)의 문화를 흡수해 가며, 한민족과 점점 분리되어갔다. 하지만 여진(말갈)족은 동이족이나 고조선 또는 부여 시대에도 크게 보면 모두 같은 민족이나 구성원이었고, 고구려와 발해 시대에도 같은 백성들이었다. 따라서 생활문화와 언어가 같거나 아주 비슷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온돌이다. 삼국시대인 쪽두글 형태였는데, 이를 여진은 ‘항(炕)’이란 형태에서 ‘금’나라까지 이어졌다. 또한 활쏘기, 매사냥 등이 이어져 왔고, 언어의 유사성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즉 고구려와 신라가 통역 없이 뜻이 통했던 것처럼, 고려와 여진 사람들 간에도 뜻이 통했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촌’ 정도의 민족적 동질성은 있었던 것 같다. 금나라 멸망이후 만주에서 일어난 금(후금)은 금나라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때의 후금은 여진의 언어와는 변화가 생기면서(조선의 말도 변화가 생겼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게 되었다.또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은 완전히 만주족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만주족을 원수로 생각하며, 약간이라도 남아 있을 지 모르던 민족적 우대감마저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그건 당시 조선인들 생각이고, 현대의 우리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바로 “여진(만주)족이 남이가?” 하는 생각이다.또한 같은 민족끼리도 싸우는 경우는 아주 많다. 하지만 멀리 동이족까지 넓히지 않더라도, 최소한 고조선 시대부턴 같거나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한 나라의 백성이었다. 지금 중국엔 만주족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만주족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의 ‘남한산성’(사진)이란 영화다. 영화 남한산성에선 후금 사람들이 만주어를 쓴다. 중국에선 모든 사극에 현대의 중국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영화에서 만주어를 듣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원나라가 중국의 역사가 아니듯, 금과 청 역시 만약 중국 영토에서 분리된다면 그땐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즉 금과 청은 여진족의 역사이고, 여진족은 과거 한민족과 같은 백성이었다. 만약 고구려나 발해가 지속되었다면, 지금은 한 민족과 국민으로 융합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같은 문화와 언어를 가졌던 여진(만주)족의 역사를 우리 또는 사촌의 역사로 연구하고, 국사 교과서에도 언급하면 어떨까 싶다.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대항할 겸...
청년 버스기사가 늘고 있다
청년 버스기사가 늘고 있다 흔히 버스 기사라고 하면 50대 남성을 떠 올린다. 그런데 요즘엔 버스를 탈 때 여성 운전사를 종종 본다. 예전에 비해 여성 운전사가 꽤 늘고 있다는 생각이다.하지만 최근엔 좀 달라진 모습이 있다. 젊은 청년 운전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젊은 여성 운전사도 있다. 이틀 전 경기도에 간 적이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20대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젊은 여성 운전사가 인사를 해서다. 이 젊은 여성은 오토도 아닌 스틱 버스를 능숙하게 운전했다. (사진) 젊은 여성이 운전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모습이 놀랍고 신선했다.그래서 버스 기사 처우를 알아봤다. 서울 시내버스의 경우 초임이 연봉으로 5,000천 만 원 정도(수당, 복리후생비 등 포함)에 평균 연봉 6,500만원 이상, 경기도의 경우 초임 연봉 약 4,200만 원 정도에 평균 연봉 약 6,000만원 이상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녀 학자금, 정년 연장, 무상식사, 의료비 지원 등의 복지가 아주 좋다. 이 정도면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보다 낫다. 특히 근무 시간이 바뀐 점도 큰 유인 요소이다.과거엔 '복격일제(하루 18시간 운행)'여서, ‘버스 운전사’라고 하면 꽤 힘든 직업이었다. 하지만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1일 2교대제'로 전환되었고, 그에 따라 하루 평균 실근무 시간이 8~9시간으로 바뀌었다. 월 근무 일수도 서울 기준 월 22~24일 근무가 정착되며, 소위 ’워라벨‘이 가능한 직업으로 바뀌었다. 또한 혼자 일하는 게 기본이기 때문에, 감정 스트레스가 적다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가끔 진상 고객이 있지만, 다른 직업에 비하면 거의 없는 편이다) 이렇게 처우가 좋아지다보니 젊은이들이 몰리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물론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다. 우선 1종 대형 면허를 따야 하고 마을 버스 등 다른 경력도 있어야 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시행하는 운행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교육도 받아야 한다.하지만 취업을 위해 오래 공부하고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는 경우도 많으니,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이 정도 노력은 충분히 할 수 있고 본다. 어쨌든 요즘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녀 청년 버스 기사가 많아진다는 건 대견한 일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세종대왕의 실수
세종대왕의 실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사진)가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했다. 해외에서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올릴 것이란다. 투자 대비 수익으론 최고일 듯하다. 필자도 봤지만, 많은 재미와 감동을 준 영화다. 모두 알듯, 이 영화는 참 가슴 아픈 어린 임금 단종의 이야기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원래는 그런 비극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단종은 적장자(문종)의 맏아들로 태어나,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적장자 중 적장자라는 불가침의 정통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버지 문종이 재위 불과 2년만에 사망한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단종의 할머니 소헌왕후는 세종보다 이미 먼저 사망했고,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직후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즉위 당시 성년에 이르기까지 수렴청정을 담당하거나, 어린 임금을 보호해줄 왕실의 웃어른(대왕대비·왕대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가장 큰 비극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종친이 종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 왕권을 위협할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며 "종친은 절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철칙을 세웠다. 이를 위해 ‘왕자의난’ 등에서 이방원을 왕에 오르도록 적극 도왔던 처남 민무구·무질 형제를 제거하고, 왕권에 방해될 만한 다수의 공신들까지 제거해버렸다. 하지만 세종은 아버지 태종처럼 모질지 못했다. 또한 세종 자신이 뛰어났던 것처럼 아들들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아들들을 너무나 예뻐했다. 맏아들 문종은 총명하고 인품이 뛰어났다. 1442년 세종이 병상에 눕자 문종은 이 시기에 대리청정을 했는데, 너무 열심히 해서 건강했던 몸이 상했다. (훈민정음 창제나 측우기 등 많은 세종의 업적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즉위하면서부터 질병에 시달리다, 일찍 생을 마감했다.차남 수양대군 역시 총명했다. 특히 무예와 병법 등 문무에 능하여, 세종의 총애를 샀다. 이에 1443년 11월 17일, 세종은 수양대군에게 국가 제사 제도를 정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는데, 이는 국정의 핵심을 왕자의 손에 넘긴 격이되었다. 삼남 안평대군은 서예와 시문(詩文), 그림, 가야금 등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꼽혔다. 조선전기 문인인 최항(1409∼1474)은 시문집 <태허정집>에서 “중국 조정의 선비들이 또한 글씨 한 장씩만 얻어도 가첩을 만들어 보배로 사랑하고 모방하여 비교하려고 했다”고 소개할 정도였다.넷째인 임영대군은 부왕(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銃筒) 제작을 감독했고, 큰형(문종) 즉위 후에는 화차를 제작했다. 왕손이면서도 근검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세종의 총애가 남달랐다.여섯째인 금성대군은 강직한 성품과 죽기를 각오한 충성심으로 이름을 남겼다. 금성대군은 유배지인 경상도 순흥에서 의병을 일으켜 단종 복위를 계획했다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막내인 영응대군 역시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고 음률(音律)에도 해박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영응대군은 세조 때 <명황계감>을 한글로 번역했다. <명황계감>은 당 현종(재위 712~756)의 이야기를 적고, 고금(古今)의 시를 덧붙여 엮은 책이다. 이렇게 자식들이 모두 뛰어나니 (딸들도 뛰어났다고 한다), 세종은 너무 예쁘고 기특해 어찌할 줄을 모르며 가까이했다. 하지만 이는 대군들의 세력을 키우는 결과를 나았다. 이에 신하들은 "반역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며 상소를 올렸지만, 세종은 "내 아들들은 다르다"며 이 경고를 덮어버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수양대군 주변에는 무인들이, 안평대군 주변에는 관료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만약 세종이 종친을 멀리하고 신하들의 우려를 받아들였다면, 수양대군이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고 계유정난이라는 비극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성군 ‘세종대왕’.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좋아하게 되는 건지, 그의 아들들 역시 너무 똑똑하다보니 내치지 못하고 가까이 한 게 결과적으론 큰 실수로 돌아왔다.아들 문종이 일찍 세상을 뜰 것을 어찌 알았겠나 싶지만, 장손자 단종의 비극을 저세상에서 바라봐야만 했던 할아버지 세종의 심정은 어땠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경제를 이따위로 하나?
경제를 이따위로 하나? 지난해 10·29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크게 우려했다. 필자 역시, 전세를 끼고 매매를 못 하게 한 걸 비판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잡는 건 아주 쉽다며, ‘정부 이기는 시장은 없다’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엔 다주택자의 장특공 유예를 종료시키며, 집 처분을 독촉했다. 그 결과 ‘3무(無)’라는 해괴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매매 거래 無 (거래 절벽), 전세 매물 無 (전세대란), 월세 매물 無 (또는 순수 월세 부담 가중)이다. 서민의 대표적 주거 형태인 전세는 씨가 말라, 수 억 원이나 올라버렸다. 따라서 전세 사는 사람들은 무리하게 영끌해서 집을 사거나, 월세로 전환하거나, 서울 밖 전세로 밀려나는 수밖에 없다. 전세가 월세로 밀려나니, 월세도 매물이 줄거나 세가 올랐다. 한동안 떨어지던 집값은 지금 오히려 일부 오르는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에 대해 갑자기 입을 닫고, 정부에선 아무도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방 선거에서 야당이 부동산 실정에 대해 연일 공격하고 있지만, 여당은 마땅한 대책이 없자 TV토론조차 피하고 있다. 이런 선거는 처음이다. 부동산 뿐인가?환율이 1,500원대로 올라섰다. 1,400원만 해도 비상상황인데, 1,500원이 넘었음에도 정부는 ‘이란전쟁’탓만 하고 있다.환율이 급등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든다. 해외 공장 설립 등 투자, 서학개미 등 투자 유출, 수출기업의 달러 비축, 미국 통상 압박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외환시장 전문가들과 학계에서 가장 뜨겁게 지적하는 고환율의 핵심 원인엔 정부의 적극적인 '돈 풀기(확장 재정)' 정책도 있다. "한국 정부가 빚을 내서 임시방편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한다"라는 인식때문에 해외 신인도도 떨어진다. 즉 이란전쟁은 환율 급등의 촉매제 역할을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금리를 올리면 되지 않을까?못 올린단다.1,900조 원이 넘는 GDP 대비 전 세계 압도적 1위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및 금융권 붕괴 위험때문이다. 정부의 경기부양 기조와의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것도 있다. 즉 지금 한국 경제는 "고열(물가·환율 폭등)이 나서 해열제(금리 인상)를 놔야 하는데, 환자의 심장(가계부채·부동산)이 너무 약해서 해열제를 놓으면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와 수출이 역대급 호황에 삼전닉스 직원들은 성과급 6억원 어쩌구 하고 있고, 법인세 추가세수만 100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온 나라가 신나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다. 빛 좋은 개살구다.일반 백성들은 치솟는 물가에 월급만 그대로라, 상대적 빈곤감과 함께 도탄에 빠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의견과 다르게, 정부는 반도체 추가세수를 어떻게 뿌릴까만 궁리하고 있다. 환율이 더 오르거나 말거나다. 물론 경기가 워낙 좋지 않으니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경기 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은 한편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러기엔 환율 등의 위험이 너무나 크다. 지금 당장을 위해 미래를 끌어다 쓰는 꼴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초기엔 필자도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대체 뭐 하려는 사람인가 싶다.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도 듣지 않는다. 마치 문재인 정부시절의 부동산 정책과 ‘소득주도성장’을 보는 것과 같다. 이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당시와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다르긴 개뿔, 기시감이 들며 갈수록 점점 더 같아진다. ‘문빠’들이 ‘개딸’로 바뀌었을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아직 한국 경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난생 처음 강국 반열에 올랐나 싶어 기뻐한 것도 잠시, 이렇게 허무하게 밀려나나 싶으니 허탈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