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민심의 승리
부동산 민심의 승리 이번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오랫동안 철저히 준비해 왔다. (다른 정부라도 그렇게 했을테니, 크게 비난하는 건 아니다)환율이 올라 아우성을 쳐도 정부는 돈을 풀었고, 유류지원금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현금을 살포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내려갈까 봐, 국민연금의 보유 비율을 바꿔가면서까지 매도를 막았다. 공교롭게(?) 서대문고가도로 철거 붕괴사고가 나자, ’기다렸다는 듯‘ 서울시 압수수색에 나서기도 했다. 게다가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를 훌쩍 넘기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나락인 상황에서, 이러한 일련의 국가적 “도우미” 행정이 곁들이니 민주당 정원오 후보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앞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투표 직전까지도 여론조사에서 정원호 후보는 언제나 오세훈 후보를 꽤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투표결과는 오세훈 후보의 극적인 승리였다.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에게 굳이 한 가지만 꼽으라면 ‘부동산’ 문제를 꼽고 싶다. 국민들은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은 부인했지만) 이재명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한 대대적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엔 ‘역린’이라 할 수 있는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강력한 대책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비거주‘나 ’실거주‘는 사실 한 끗 차이다. 누구나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울에 사는 자가보유자(2024년 기준 48.1%)들은 앞으로의 부동산 정책에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특히 재개발 재건축을 하려는 지역에선 민주당 후보는 인기가 바닥이다. 과거 박원순 시장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원순 시장이 이유가 어쨌든 재임기간(2011년~2020년)동안 해제한 정비구역(재개발·재건축·뉴타운 등)은 약 390여 곳이나 된다. 이로 인해 서울 시내 신축 아파트 공급줄이 끊겼고, 이는 지금까지 서울 집값 폭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그러니 재개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지역에선 민주당보다 오세훈 후보를 선호한다. 하지만 정원호 후보는 유세기간 중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줄곧 끌려가는 모습만 보였다. 말로는 “재개발 재건축 완화, 적극 지원”을 외쳤지만, 이미 한번 트라우마를 겪은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기에 역부족이었다. 헌정 사상 최초이자 해외 토픽에나 등장할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이를 입증해 준다.송파 광진 강남구 주민들 중 일부는 원래 국민의힘을 찍어줄 생각이 없었고, 기권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선거 후의 ’부동산 강력 대책‘ 또는 ’재개발 재건축‘을 생각하니 마음이 바뀌어 기꺼이 투표소로 향하면서, 투표율이 급증하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전월세 급등으로 인해, 일부 집 없는 서민들의 지지를 얻는데에도 쉽진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절박한 경고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세종대왕의 실수
세종대왕의 실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사진)가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했다. 해외에서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올릴 것이란다. 투자 대비 수익으론 최고일 듯하다. 필자도 봤지만, 많은 재미와 감동을 준 영화다. 모두 알듯, 이 영화는 참 가슴 아픈 어린 임금 단종의 이야기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원래는 그런 비극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단종은 적장자(문종)의 맏아들로 태어나,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적장자 중 적장자라는 불가침의 정통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버지 문종이 재위 불과 2년만에 사망한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단종의 할머니 소헌왕후는 세종보다 이미 먼저 사망했고,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은 직후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즉위 당시 성년에 이르기까지 수렴청정을 담당하거나, 어린 임금을 보호해줄 왕실의 웃어른(대왕대비·왕대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가장 큰 비극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종친이 종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 왕권을 위협할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며 "종친은 절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철칙을 세웠다. 이를 위해 ‘왕자의난’ 등에서 이방원을 왕에 오르도록 적극 도왔던 처남 민무구·무질 형제를 제거하고, 왕권에 방해될 만한 다수의 공신들까지 제거해버렸다. 하지만 세종은 아버지 태종처럼 모질지 못했다. 또한 세종 자신이 뛰어났던 것처럼 아들들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아들들을 너무나 예뻐했다. 맏아들 문종은 총명하고 인품이 뛰어났다. 1442년 세종이 병상에 눕자 문종은 이 시기에 대리청정을 했는데, 너무 열심히 해서 건강했던 몸이 상했다. (훈민정음 창제나 측우기 등 많은 세종의 업적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즉위하면서부터 질병에 시달리다, 일찍 생을 마감했다.차남 수양대군 역시 총명했다. 특히 무예와 병법 등 문무에 능하여, 세종의 총애를 샀다. 이에 1443년 11월 17일, 세종은 수양대군에게 국가 제사 제도를 정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는데, 이는 국정의 핵심을 왕자의 손에 넘긴 격이되었다.삼남 안평대군은 서예와 시문(詩文), 그림, 가야금 등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꼽혔다. 조선전기 문인인 최항(1409∼1474)은 시문집 <태허정집>에서 “중국 조정의 선비들이 또한 글씨 한 장씩만 얻어도 가첩을 만들어 보배로 사랑하고 모방하여 비교하려고 했다”고 소개할 정도였다.넷째인 임영대군은 부왕(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銃筒) 제작을 감독했고, 큰형(문종) 즉위 후에는 화차를 제작했다. 왕손이면서도 근검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세종의 총애가 남달랐다.여섯째인 금성대군은 강직한 성품과 죽기를 각오한 충성심으로 이름을 남겼다. 금성대군은 유배지인 경상도 순흥에서 의병을 일으켜 단종 복위를 계획했다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막내인 영응대군 역시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고 음률(音律)에도 해박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영응대군은 세조 때 <명황계감>을 한글로 번역했다. <명황계감>은 당 현종(재위 712~756)의 이야기를 적고, 고금(古今)의 시를 덧붙여 엮은 책이다. 이렇게 자식들이 모두 뛰어나니 (딸들도 뛰어났다고 한다), 세종은 너무 예쁘고 기특해 어찌할 줄을 모르며 가까이했다. 하지만 이는 대군들의 세력을 키우는 결과를 나았다. 이에 신하들은 "반역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며 상소를 올렸지만, 세종은 "내 아들들은 다르다"며 이 경고를 덮어버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수양대군 주변에는 무인들이, 안평대군 주변에는 관료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만약 세종이 종친을 멀리하고 신하들의 우려를 받아들였다면, 수양대군이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고 계유정난이라는 비극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성군 ‘세종대왕’.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좋아하게 되는 건지, 그의 아들들 역시 너무 똑똑하다보니 내치지 못하고 가까이 한 게 결과적으론 큰 실수로 돌아왔다.아들 문종이 일찍 세상을 뜰 것을 어찌 알았겠나 싶지만, 장손자 단종의 비극을 저세상에서 바라봐야만 했던 할아버지 세종의 심정은 어땠을까?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이상한 선거 후과(後果)
이상한 선거 후과(後果) 선거 초기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5:1 압승을 예상했다. 실제 여론조사도 비슷하게 나오고 있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비슷하게 예상했다. 그런데 투표 결과는 예상과 꽤 달랐다.가장 큰 이변은 뭐니뭐니해도 서울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당선이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선 패배한 부산시장 박형준 후보와의 차이를 ‘친윤 세력과 결별 여부’를 든다. 즉 오세훈 후보는 친윤 및 지도부와의 단절하며, 단독으로 선대위를 꾸려 선거운동을 해서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나중엔 빨간색 점퍼마저 입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는 당 지도부와의 관계 단절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포지셔닝을 했다. 슬그머니 양다리 걸치면 양쪽 지지를 받을 줄 알았지만, 이를 간파한 중도세력은 박 후보를 외면해 버렸다. 평택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선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김용남 조국 두 후보가 치열하게 싸우는 틈에서, 유의동 후보 역시 당 지도부와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중도 표심을 잡는 데 성공했다. 조국 후보는 궁리 끝에 골라잡은 지역이었음에도 패하면서, 잠룡에서 토룡(土龍)정도로 전락했다. 결정적으로 “서울 강남에 있는 집을 팔 것인가?” 질문에 “팔 이유를 못 찾겠다”며 평택시민을 우습게 알더니, 결국 강남 본인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만약 강남집을 팔겠다고 했으면, 당선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국 후보는 집이냐 국회의원이냐에서 집을 선택한 것이다. 그만큼 절박함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배가 불러 정치 하겠나 싶다. 어쨌든 민주당에서 발생한 13석을 포함해 보궐선거 전체 14개 지역 중, 국민의힘이 4석 무소속이 1석을 가져가며 민주당 의석은 오히려 4석 줄었다. 이번 지방선거는 압승을 예상했던 민주당에겐 만족할 수 없는 결과다. 거꾸로 국민의힘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고 본다. 그런데 나름 선방했음에도 국힘 지도부는 사퇴 요구를 받게 됐다. 결정적인 서울이나 평택 을에서 후조들은 지도부와 손절한 채, 순전히 개인기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선거 전부터 물러나라는 요구를 받던 야당 지도부가 실제 선거 전에 지도부가 물러났으면, 부산시장 등 더 많은 곳에서 승리했을지 모른다. 선방해도 쫓겨나게 된 야당 지도부. 이런 경우가 또 있었을까 싶다. 그나저나 대통령의 만류에도 사의를 표하고, 출마를 강행한 하정우 후보는 이제 어떻게 할까?다시 청와대로 돌아가나? 아직 공석인 걸 보니, 이 대통령은 이전에 예상했었고 돌아온 탕아를 받아 주려 하나? 청와대 수석 비서관 자리가 동아리 간부인가? 정말 이상한 선거였다.앞으로의 후과(後果) 역시 재미있을 것 같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예하예술학교
경계선지능과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위한 배움과 치유의 공간인 예하예술학교의 설립을 위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향후 재정 및 운영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요?앞으로도 소외받는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물론 3선에 도전의사가 있으시겠죠?
휘경 2동 고도제한
쫌 오래된 일이긴 한데... 진행중인가 궁금해서요배봉산 군사기지 때문에 휘경 2동만 고도제한 있어서건물을 증축할수가 없었는데고도제한 철회 청약이 채택된걸로 아는데그후로 진행이 어떻게 되었나요??한 3년전인데 아직도 진행사항을 모르겠네요...
중랑구 거주하는사람입니다
중랑구에 산지 오래됫는데 발전한다는 느낌이 없네요...학생때부터 쭉 살았는데... 어떠한일을 하시는건가요선거때 제시하신 공략은 잘 이행하시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