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보내는 이유
학교에 보내는 이유 필자가 중고교 시절, 체육 선생님들은 참 편했다. 축구공 하나 던져주면 끝이었다. 학생들끼리 알아서 축구를 하든, 아무 것도 안 하든 각자 마음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학부모들이 ‘축구는 위험하니 하지 말아달라’는 식의 요구를 해와서, 축구도 못 한단다. 애들 다치면 학부모들이 학교와 교사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에, 운동회도 안 한단다. 필자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 추억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고생길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청량리역에 모여 열 몇 시간 동안 완행열차를 타고 경주로 향했다. 숙소에서 주는 새벽밥은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모른다. 비용이 저렴하긴 했지만, 해도 너무 심했다. 하지만 요즘은 수학여행의 격이 다르다.2~4명끼리 호텔에서 자고 식사도 좋고, 특히 안전요원을 여럿 배치해야 한다. 당연히 비용이 올라간다. 여행으로서 격이 올라가고 추억이 된다.그런데 최근 강원도 어떤 학교에서 2박3일 수학여행비가 60만원이라는 게 문제가 되었다. 너무 비싸다는 거였다. 결국 취소되었다. 결국 이 학부모 한 명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추억을 앗아가게 되었다. 이런 부모들은 야외학습 즉 수학여행이나 소풍에 가서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학교나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단다. 그래서 이젠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아예 안 가는 학교가 많다. 이렇게 진상을 떠는 일부 학부모들 때문에, 정작 애꿎은 다른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면 이런 학부모들에게 소풍도 수학여행도 운동회도 축구도 못 하게 하면서, 학교에 아이들을 왜 보낼까? 그들에겐 단순히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해서’라고 생각한다.즉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서다. 학교는 단순히 교과과목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우고, 규율에 따르는 법을 배우고, 교사에게 복종하는 법도 배우고, 싫은 것을 하거나 먹기도 하는 등, 사회화 과정을 배우는 곳이다. 그런데 일부 부모들의 경우 학교와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상전 모시듯 하기를 원한다. 아들이 군대에 가면, 훈련 시키지 말라고 민원을 넣는 부모들이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자식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100% 부모가 잘 못 키운 덕이다. 이런 부모들은 차라리 홈스쿨링을 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제대로 걸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제대로 걸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가끔 나이 많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보폭이 10cm도 안 되게 종종걸음으로 열심히(?) 걷는 모습을 본다. 운동인지 이동인지 모르겠지만, 운동으로 걷는다면 오히려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 노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게 낙상이기 때문이다. ‘넘어진 거 가지고 엄살떤다’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노인에겐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다. 질병 같은 경우 검사 등으로 미리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낙상은 갑자기 발생하는 사고이므로 더 무섭다. 특히 노인의 경우 고관절이나 골반뼈가 부러지면, 지옥문과 저승문이 함께 열린다. 고관절 골절 환자의 약 20~30%는 1년 이내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후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노인들이 낙상으로 인해 사망한다는 의미다. 즉 낙상은 치명상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골반뼈가 부러지면 어떻게 될까?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건 기본이다.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한다. 시간 맞춰 통나무 굴리듯 굴려줘야 한다. 욕창이 생길 수 있다. 정말 괴롭다.통증은 제쳐놓더라도, 식사와 배변도 문제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상체의 침대를 약간 일으키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여러 번 나눠 먹어야 한다. 배변 시 힘을 줄 수가 없어, 설사 비슷하게 나오도록 약을 먹어야 한다. 배변처리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운동을 전혀 못 하니 늙으며 줄어든 근육마저 없어지고, 당뇨 고혈압 고지혈 등 신진대사가 엉망이 된다. 이렇게 몇 달을 힘들게 참아야, 간신히 앉고 돌아눕고 일어선다. 회복도 아주 더디다.배우자나 자식 등 가족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노인 골절의 경우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이 폐렴이라고 한다. 누워만 있으면 폐에 물이 차는데, 이걸 잘 빼주지 않으면 또는 잘 빼주어도 어떤 경우엔 폐렴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노인들의 낙상 장소 1위가 집안이란다. 문지방에 걸리고, 화장실에서도 넘어진다. 집 밖으로 나가면, 연석이나 울퉁불퉁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진다. (눈이 오면 외출을 자제하므로, 빙판길 낙상은 의외로 적다고 한다) 이렇게 자꾸 걸려 넘어지는 이유는 발을 들기 힘들어서다. 걸을 때엔 어느 정도 발을 높이 들어야 바닥에 걸리지 않는데, 기력이 쇠하니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게 된다. 그러니 조그만 턱에도 걸려 넘어지고 만다. 자꾸 넘어지다 보면,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 큰 폐가 되는 사달이 난다. 필자는 평소 걷기를 좋아한다.혼자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ybjy0906@naver.com>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최고였다!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최고였다! 조선 시대에 일식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왕이 정치를 잘못해서 하늘이 내리는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일식이 예보되면 왕은 소복을 입고 궁궐 마당에서 해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구식례(救食禮)라는 중대한 국가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러던 세종 4년(1422년) 1월 1일(음력), 신하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뜻깊은 날에 일식이 예보되었다. 세종은 예법에 따라 소복을 갈아입고 마당에 엎드려 경건하게 일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보된 시간이 되어도 해가 멀쩡했다. 결국 일식은 천문 기관인 서운관이 예보한 시간보다 1각(약 14.4분)이 늦게 시작되었다. 임금이 차가운 마당에서 옷을 갖춰 입고 15분 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서 있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왕의 권위에 금이 간 이 사건으로 인해 일식 예보를 담당했던 관리 이천봉은 태형(곤장)을 맞았다. 그러면 왜 14.4분이 틀렸을까? (필자는 그 정도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이 오차는 천문 관리의 단순한 계산 실수가 아니라, 당시 조선이 중국 명나라의 달력인 '대통력'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명나라의 달력은 중국의 수도(당시 남경/북경)를 기준으로 계산된 것이지만, 한양(서울)은 중국보다 동쪽에 치우쳐 있어 천문 현상이 발생하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종 14년에도 일식 오보 사건이 한 번 더 발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의 농사가 최우선이었던 시절이라,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맞는 역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중국의 역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달력을 만드는 것은 ‘자주 독립’으로 비춰지며, 중국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험한 정치적 행위였다. 하지만 세종은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1444년 이순지·김담 등의 천재 과학자들과 함께 마침내 조선 고유의 역법서인 《칠정산》을 완성했다.실제로 《칠정산》을 완성한 후인 세종 29년(1447년) 음력 8월 1일에 일식이 또 있었는데, 이때는 일식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을 단 1분 내외의 오차로 완벽하게 예측해 냈다.(망원경도 없던 시절에 일식을 도대체 어떻게 미리 예측했을까?) 당시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 수도를 기준으로 해, 달, 5개 행성(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의 움직임을 이 정도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던 나라는 조선, 중국, 아라비아 세 곳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울러 세종대왕이 신하를 시켜 ‘일 년의 길이’를 쟀다. "1년은 365.2425일"이라고 계산했다. 현대 과학으로 정한 지금의 일 년과 비교하면, 불과 0.0004일 차이라고 한다. 당시 최고의 정확성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칠정산 내외편’이 대충 천문학과 관련되었다고만 배웠지만, 이렇게 대단한 업적인 줄은 몰랐다.《칠정산 내편》은 기존 동양의 역법을 철저히 한양의 위도와 경도에 맞춰 재계산했다. 반면 《칠정산 외편》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던 아라비아의 천문학을 도입해, 고등 기하학과 삼각함수(구면삼각법)로 행성의 궤도를 풀어냈다. 헐~ 말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워 진다. 정확한 수식을 만들려면 정밀한 데이터가 필수다. 경복궁에 세워진 거대 천문대 '간의대'에서는 15세기형 조준경이라 할 수 있는 간의(簡儀)와 혼천의(渾天儀)를 통해 매일 밤 별들의 좌표를 분(?) 단위로 측정했다. 또한 거대한 자의 원리를 이용한 규표(圭表)로 태양 그림자의 길이를 밀리미터(?) 단위로 계측하여 24절기를 정확히 잡아냈다. 장영실이 만든 자동 물시계 자격루는 관측 데이터에 오차 없는 표준시 역할을 했다. 15세기 유럽이 달력의 오차를 잡지 못해 쩔쩔매다 1582년이 되어서야 겨우 개정한 '그레고리력'의 핵심 수치를, 조선은 이미 138년 전인 1444년에 완성해 사용하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업적이다.우리 과학이 유럽과 중국을 훨씬 앞섰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하지만 이랬던 조선이 나중에 갈수록 망가졌다는데 대해 한심함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