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안 하는 한국인
운동 안 하는 한국인 필자는 그동안 한국 청소년들은 운동을 세계에서 가장 안 하고, 어른들은 꽤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청소년들은 ‘뭐하러 힘들게 운동하냐?’라고 생각하고, 부모들 역시 학교 체육시간에 힘든 운동을 시키지 말라고 한다니 말이다. 실제로 약 1년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146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청소년의 신체활동 ‘부족률’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나쁜 수치를 기록하며 세계 '꼴찌'였다. 특히 남학생의 신체활동 ‘실천율’은 그나마 25.1%인 반면, 여학생은 고작 8.9%로 ‘큰일 날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열심히 운동하는 어른들은 많아 보인다. 걷기 등산 수영 요가 필라테스 골프 당구 사이클 러닝크루 탁구까지, 동호회도 많고 SNS에도 넘쳐나고 헬스로 다져진 몸 좋은 젊은이들도 흔히 보인다. 그래서 “어른들은 열심히 운동하는데, 아이들은 왜 안 할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필자의 착각임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는 어른들 역시 운동을 안 하기 때문이다. 실체를 파헤쳐봤다.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규칙적인 운동 참여율’(주 1회, 30분 이상 기준)은 62.9%에 달한다. 10명 중 6명 이상은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셈으로, 낮은 편은 아니다.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 기준 한국 성인의 ‘신체활동 부족률’은 54.4%로, 전 세계 평균(31.3%)을 한참 웃돈다. 어찌 된 일일까? WHO는 주당 최소 150분의 중강도 운동(또는 75분 고강도 운동)을 권장하는데, 한국인들은 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그 운동량이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의미다. 즉 평소 일상에서는 자가용 이용 등으로 거의 걷지 않다가(하루 평균 8.6시간 좌식 생활), 가끔 비싼 시설에 가서 돈 내고 하는 운동으로 만족한 결과다. 그나마 일부 사람들의 경우다.하지만 서구권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등)에선 자전거 출퇴근, 동네 조깅, 생활 체육 공원 이용 등 일상 속에서의 운동이 생활화되어 있어, 신체활동 부족률이 20%대로 매우 낮다. 이렇게 한국은 안 하는 사람은 숨쉬기 운동만 하고, 하는 사람은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찍으며 전문가 수준으로 파고드는 '운동의 양극화'가 외국보다 훨씬 심하다. 따라서 많은 국민들이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퍼즐이 맞춰지며, 진실이 밝혀졌다.부모들이 운동을 안 하니까 운동의 효과를 깨닫지 못 하고, 자녀들에게는 운동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며 운동을 막아서였다. 필자도 예전엔 운동을 아주 싫어했다.하지만 나이 들면서 시작한 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나선, 지금은 운동을 안 하면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청소년들은 운동장에서 뛰고 놀아야 한다. 무릎 좀 깨진다고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어릴 적 체력이 평생을 간다.(억지로라도 운동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체력장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지금의 학부모들이라면 난리 치며 반대할 것이 뻔하다. 체력장 도중 또는 체력장 준비하다가 다치거나 쓰러지면, 누가 책임지겠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부모들이 편하게 살 빼려 부작용이 심한 비만치료제(위고비·마운자로 등)부터 찾지 말고, 솔선수범 운동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도 본받고 건강한 가족이 된다. 평소에 적당히 체력을 단련해야, 여기저기 덜 아프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산다.“건강한 몸에 건전한 마음이 깃든다”(원문 라틴어 Mens sana in corpore sano)라는 말도 있다. 편한 것만 찾다가 늙으면, 추한 꼴 보이며 골로 갈 수 있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밥(쌀)의 민족
밥(쌀)의 민족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 중 하나가 “밥 한번 먹자”다. 유래나 이유가 어떻든, 그만큼 밥에 진심이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모든 힘은 밥심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러면 밥의 원료인 쌀(벼)을 가장 먼저 재배한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바로바로..대한민국이다.(필자도 이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과거엔 ‘벼농사는 중국 장강 유역에서 시작했다’가 정설처럼 되어 있었는데, 1994년 청주 소로리 공사 현장에서 볍씨가 130여 개 발견되면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이 볍씨들을 서울대와 미국 애리조나대 등 세계 최고 기관에 보내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최대 15,000년 ~ 17,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중국의 기록보다 무려 3,000년 이상 앞선 전 세계 최고(最古) 기록이다. 특히 단순히 오래된 야생 벼가 아니라, 인간이 직접 기르는 '야생에서 재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영국 BBC가 이를 긴급 보도했으며, 세계적인 고고학자 콜린 램프류(Colin Renfrew) 교수의 유명 고고학 교과서(Archaeology: Theories, Methods and Practice)에도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공식 등재되었다.즉 한국이 전 세계 쌀 문화와 벼농사 기원의 시조일 수 있음을 증명한 발견이 바로 ‘소로리 볍씨’다. 이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마을인 청주 소로리에 선사박물관이 들어설 계획이다. 벼농사의 원조답게, 한국은 역사적으로도 꾸준히 벼농사 즉 쌀농사에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일본의 쌀 품종 개발이 무섭게 성장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고시히카리'와 ‘아키바레(추청)’ 같은 명품 품종을 개발했고, 한국 식탁도 이들이 오랫동안 점령했다. 1970년대 한국은 양을 많이 수확하기 위해 대량 생산용 '통일벼'를 대대적으로 심었다. 하지만 통일벼는 푸석하고 찰기가 없어 맛이 떨어졌다. 이때 소득이 늘어난 대도시 소비자들이 "돈을 더 주더라도 맛있는 밥을 먹겠다"며 찾기 시작한 게 바로 일본쌀이었다. 특히 경기도 이천이나 여주 등에서 ‘아키바레’를 많이 재배하면서, "임금님표 이천쌀 = 아키바레 = 최고급 쌀"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한국은 ‘밥(쌀)의 민족’답게 판도를 뒤집었다.우선 품종 개량부터 시작했다. 정부와 농촌진흥청은 품종 개량을 꾸준히 진행해, 2020년대를 기점으로 경기 이천, 여주 등 전국의 유명 쌀 주산지에서 아키바레와 고시히카리가 거의 퇴출당했다.또 하나의 사건은 압력밥솥 개발이다. 고압, 초고압, 유도가열(IH) 등 온갖 첨단 기술을 동원해 "가마솥에서 갓 지은 듯한 윤기 나는 찰진 밥맛"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밥솥 기술은 우리나라가 독보적이고, 특히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사가는 주요 품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밥(쌀, 벼)는 늘 한국이 세계를 선도해 왔다.그래서 지금도 한국인은 ‘밥심’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낄끼빠빠
낄끼빠빠 최근 유튜브 쇼츠에서 이런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한 여성 사장님이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 남성 손님이 매일 저녁마다 똑같은 딸기초코케익을 사 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그 손님이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사장은 무심코 “딸기초코케익이 품절인데, 다른 거 드리면 안될까요?”라고 말하자, 해당 손님은 얼굴이 굳으며 추천한 케익을 사 갔다. 그런데 그 다음부턴 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괜히 아는 척 했다가, 단골 손님만 놓쳐 버렸다. 이를 제미나이에서 찾아보니 후면 공간 (Back Stage)과 전면 공간 (Front Stage)이라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후면 공간은 인간이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긴장을 풀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무대 뒤' 공간이고, 전면 공간은 사회적 역할(직장인, 예의 바른 성인 등)을 수행하며 가면을 써야 하는 '무대 위' 공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골 손님에게 카페는 자신을 알아보지 않고 편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후면 공간’이었지만, 사장님이 아는 척을 하는 순간 손님에게 카페는 '전면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앞으로는 올 때마다 나를 알아본다는 '사회적 긴장감'이 발생하면서, 그 공간이 불편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란다. 생각해보니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한 25년 전 쯤, 당일 신장개업을 한 작은 술집을 갔었다. 필자 또래의 사장 부부가 운영해서인지, 좋게 말을 걸어 줬다. 두세 번쯤 갔었나? 어느 날 자리 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남자 사장이 테이블에 앉아서 필자에게 “재탁씨”라며 친한 척하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기분이 상했다. “내가 지 친군가? 좀 잘 대해줬더니, 졸지에 재탁씨라네?” 우리나라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 건 아주 친한 사람들끼리나 하는 행위다. 대개 직책이나 직함 또는 그냥 ‘사장님’이라고 통칭한다.이렇게 필자는 '돈을 지불하고 정당한 서비스를 받는 손님'으로 그 자리에 갔는데, 주인이 "OO 씨"라고 부르는 순간 손님이 아니라 '사적 친분 관계'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날로 발을 끊었다. 더 흔한 경우도 있다.어느 식당 같은 곳에 가서 대화를 하는데, 서빙하는 분이 끼어들어 말을 가로채는 경우다. “그럴 땐 ** 해야 돼요”라거나, “나도 거기 가 봤어요” 하는 식이다. 무슨 말을 못 하겠다. 심지어 “아주머니 여기 앉으세요, 같이 얘기하게’라고 얘기할뻔했다.나아가 일행에게 “전에 가족끼리 오셨죠?”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되면 프라이버시 침해다. 종업원이 말 한마디 친한 척 잘못했다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데, 왜 그런 얘길 할까?손님이 식당의 특정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는 순간, 그 테이블과 주변 공간은 손님의 '사적 영역'이다. 서빙 직원이 대화에 끼어들거나 주인이 과도하게 친한 척 하는 것은 '손님의 영역을 무단 침범하는 행위'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끔 착각하는 게 있다. ‘친한 단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거나, ‘친한 척 또는 말을 걸어주면 손님이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이다.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정중한 무관심 (Civil Inattention)’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제시한 개념이다. '상대방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고의로 시선을 거두거나 모르는 척해주는 배려'라고 한다. 물론 자신을 알아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점포는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얘기이고, 아주 오래된 가게의 경우다. 요즘 “낄끼빠빠“라는 말이 유행한다.”낄 때 즉 껴야 할 땐 과감히 끼어들고, 빠져야 할 땐, 확실히 빠지라“는 방송 연예 프로그램용 은어다.마찬가지로 손님의 성향에 따라 아는 척하는 게 좋은지 모르는 척 하는 게 좋은지, 잘 판단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알아도 모르는 척해주는 게 현대사회의 기본 예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신문에서 TV편성표가 사라지고 있다
신문에서 TV편성표가 사라지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적, 추석이나 설 연휴엔 신문에 TV특집편성표가 별도로 있었다. 그러면 빨간 펜으로 보고 싶은 프로그램에 동그라미를 쳤다. 주로 ‘특선 영화’가 인기였다. TV 편성표는 신문 맨 뒷면에 있었다. 그러다가 케이블TV가 생기자 편성표는 한 면을 모두 차지하게 되면서, 내지로 옮겨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은 TV를 보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신문 보는 사람 역시 크게 줄었다. 또한 플랫폼에서 편성표를 불 수 있기 때문에, 편성표를 보려고 굳이 신문을 펼칠 필요도 없어졌다. 신문 광고도 크게 줄면서 신문 지면도 줄었다. TV 편성표를 비싼 지면에 굳이 실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신문 지면의 터줏대감이었던 TV 편성표가 미디어 환경 변화(OTT, 유튜브 중심)와 종이 신문 제작비용 부담으로 인해 빠르게 퇴장하고 있다.경향신문,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세계일보, 국민일보 등 6개사는 지면에서 TV 편성표를 완전히 제외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4개사는 아직 편성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들 역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종편) 위주로 대폭 축소해 게재한다. 해외 언론들은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미국 최고의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이미 2020년 9월을 기점으로 81년간 이어오던 지면 TV 편성표를 전면 폐지했다. 사실 신문사들은 수년 전부터 편성표 폐지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검색이 서툰 골수 고령층 독자들의 항의와 절독 협박이 워낙 거세어, '폐지했다가 슬그머니 다시 부활시키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2026년 현재는 고령층마저 유튜브나 스마트TV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신문사들이 마침내 완전히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마 고령층 독자가 많은 보수 신문 4개사만 아직 편성표를 유지하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 TV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문신을 왜 해서...
문신을 왜 해서... 필자는 자식들에게 ‘젊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몇 가지 얘기했는데, 그중 하나가 문신이다. 이유는 ‘되돌릴 수 없어서(어려워서)’다. 요즘 젊은이들은 문신을 자기 표현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생기며, 유행처럼 문신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젠 문신도 합법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심리적 또는 관행적인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 가수 슬리피(Sleepy)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슬리피맞아요)을 통해 양팔과 손가락 등에 새겨진 문신을 지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결혼 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얻은 소중한 두 아이(1남 1녀)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데, '저 애 아빠 문신 봐' 하는 따가운 시선이 있어, 문신 때문에 어린이집 가는 게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안 좋은 걸’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이 대목에서 ‘본인이 생각해도 안 좋은 걸, 왜 그렇게 많이 했을까’ 싶다. 문신을 지우는 피부과 전문의가 “여성들이 문신을 지우기 위해 병원을 찾는 때가 언제일까?”라는 질문을 했다.흔히 ‘결혼할 때’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실제 가장 많은 경우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유치원) 갈 때’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가수 슬리피와 같은 이유다. 아이의 친구들이나 다른 학부모들이 "OO이 엄마 문신했네"라며 선입견을 품고 볼까 봐 지우겠다는 것이다. 역시 아이들이 관계되면, 부모는 약해진다. 학생 때 호기로 문신을 했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승무원, 호텔리어, 공무원, 교사, 금융권 등 대면 서비스나 신뢰감이 중요한 직업군을 준비하는 경우, 문신은 면접에서 감점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경찰의 경우 문신이 있으면 그 자체로 탈락이다.또한 나이 들어 비즈니스 할 때, 문신은 상대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 다. 가장 ‘미련한’ 문신은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경우다. 즉 ‘철없던’ 젊은 시절 연인과 함께 새겼던 '커플 타투'나 이니셜 같은 것들이다. 시간이 흐른 뒤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미련하게도 한 사람과 영원할 걸로 착각했다가, 지우는 고통을 느끼며 인생의 교훈도 얻게 된다. 문신은 새길 때보다 지울 때가 10배는 더 아프고,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 한 번에 안 되고 여러 번에 걸쳐 시술하는 경우가 많고, 색깔 문신은 흑백보다 2~3배 더 힘들고 비용도 더 든다. 특히 여성들은 피부가 약해 더더욱 고생이라고 한다.또한 100%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서, 미세한 자국이라도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애초에 문신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최고였다!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최고였다! 조선 시대에 일식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왕이 정치를 잘못해서 하늘이 내리는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일식이 예보되면 왕은 소복을 입고 궁궐 마당에서 해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구식례(救食禮)라는 중대한 국가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러던 세종 4년(1422년) 1월 1일(음력), 신하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뜻깊은 날에 일식이 예보되었다. 세종은 예법에 따라 소복을 갈아입고 마당에 엎드려 경건하게 일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보된 시간이 되어도 해가 멀쩡했다. 결국 일식은 천문 기관인 서운관이 예보한 시간보다 1각(약 14.4분)이 늦게 시작되었다. 임금이 차가운 마당에서 옷을 갖춰 입고 15분 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서 있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왕의 권위에 금이 간 이 사건으로 인해 일식 예보를 담당했던 관리 이천봉은 태형(곤장)을 맞았다. 그러면 왜 14.4분이 틀렸을까? (필자는 그 정도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이 오차는 천문 관리의 단순한 계산 실수가 아니라, 당시 조선이 중국 명나라의 달력인 '대통력'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명나라의 달력은 중국의 수도(당시 남경/북경)를 기준으로 계산된 것이지만, 한양(서울)은 중국보다 동쪽에 치우쳐 있어 천문 현상이 발생하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종 14년에도 일식 오보 사건이 한 번 더 발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의 농사가 최우선이었던 시절이라,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맞는 역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중국의 역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달력을 만드는 것은 ‘자주 독립’으로 비춰지며, 중국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험한 정치적 행위였다. 하지만 세종은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1444년 이순지·김담 등의 천재 과학자들과 함께 마침내 조선 고유의 역법서인 《칠정산》을 완성했다.실제로 《칠정산》을 완성한 후인 세종 29년(1447년) 음력 8월 1일에 일식이 또 있었는데, 이때는 일식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을 단 1분 내외의 오차로 완벽하게 예측해 냈다.(망원경도 없던 시절에 일식을 도대체 어떻게 미리 예측했을까?) 당시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 수도를 기준으로 해, 달, 5개 행성(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의 움직임을 이 정도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던 나라는 조선, 중국, 아라비아 세 곳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울러 세종대왕이 신하를 시켜 ‘일 년의 길이’를 쟀다. "1년은 365.2425일"이라고 계산했다. 현대 과학으로 정한 지금의 일 년과 비교하면, 불과 0.0004일 차이라고 한다. 당시 최고의 정확성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칠정산 내외편’이 대충 천문학과 관련되었다고만 배웠지만, 이렇게 대단한 업적인 줄은 몰랐다.《칠정산 내편》은 기존 동양의 역법을 철저히 한양의 위도와 경도에 맞춰 재계산했다. 반면 《칠정산 외편》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던 아라비아의 천문학을 도입해, 고등 기하학과 삼각함수(구면삼각법)로 행성의 궤도를 풀어냈다. 헐~ 말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워 진다. 정확한 수식을 만들려면 정밀한 데이터가 필수다. 경복궁에 세워진 거대 천문대 '간의대'에서는 15세기형 조준경이라 할 수 있는 간의(簡儀)와 혼천의(渾天儀)를 통해 매일 밤 별들의 좌표를 분(?) 단위로 측정했다. 또한 거대한 자의 원리를 이용한 규표(圭表)로 태양 그림자의 길이를 밀리미터(?) 단위로 계측하여 24절기를 정확히 잡아냈다. 장영실이 만든 자동 물시계 자격루는 관측 데이터에 오차 없는 표준시 역할을 했다. 15세기 유럽이 달력의 오차를 잡지 못해 쩔쩔매다 1582년이 되어서야 겨우 개정한 '그레고리력'의 핵심 수치를, 조선은 이미 138년 전인 1444년에 완성해 사용하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업적이다.우리 과학이 유럽과 중국을 훨씬 앞섰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하지만 이랬던 조선이 나중에 갈수록 망가졌다는데 대해 한심함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