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끼빠빠
낄끼빠빠 최근 유튜브 쇼츠에서 이런 콘텐츠를 보게 되었다. 한 여성 사장님이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 남성 손님이 매일 저녁마다 똑같은 딸기초코케익을 사 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그 손님이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사장은 무심코 “딸기초코케익이 품절인데, 다른 거 드리면 안될까요?”라고 말하자, 해당 손님은 얼굴이 굳으며 추천한 케익을 사 갔다. 그런데 그 다음부턴 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괜히 아는 척 했다가, 단골 손님만 놓쳐 버렸다. 이를 제미나이에서 찾아보니 후면 공간 (Back Stage)과 전면 공간 (Front Stage)이라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후면 공간은 인간이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긴장을 풀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무대 뒤' 공간이고, 전면 공간은 사회적 역할(직장인, 예의 바른 성인 등)을 수행하며 가면을 써야 하는 '무대 위' 공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골 손님에게 카페는 자신을 알아보지 않고 편하고 긴장을 풀 수 있는 ‘후면 공간’이었지만, 사장님이 아는 척을 하는 순간 손님에게 카페는 '전면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앞으로는 올 때마다 나를 알아본다는 '사회적 긴장감'이 발생하면서, 그 공간이 불편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란다. 생각해보니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한 25년 전 쯤, 당일 신장개업을 한 작은 술집을 갔었다. 필자 또래의 사장 부부가 운영해서인지, 좋게 말을 걸어 줬다. 두세 번쯤 갔었나? 어느 날 자리 잡고 앉았는데, 갑자기 남자 사장이 테이블에 앉아서 필자에게 “재탁씨”라며 친한 척하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기분이 상했다. “내가 지 친군가? 좀 잘 대해줬더니, 졸지에 재탁씨라네?” 우리나라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 건 아주 친한 사람들끼리나 하는 행위다. 대개 직책이나 직함 또는 그냥 ‘사장님’이라고 통칭한다.이렇게 필자는 '돈을 지불하고 정당한 서비스를 받는 손님'으로 그 자리에 갔는데, 주인이 "OO 씨"라고 부르는 순간 손님이 아니라 '사적 친분 관계'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날로 발을 끊었다. 더 흔한 경우도 있다.어느 식당 같은 곳에 가서 대화를 하는데, 서빙하는 분이 끼어들어 말을 가로채는 경우다. “그럴 땐 ** 해야 돼요”라거나, “나도 거기 가 봤어요” 하는 식이다. 무슨 말을 못 하겠다. 심지어 “아주머니 여기 앉으세요, 같이 얘기하게’라고 얘기할뻔했다.나아가 일행에게 “전에 가족끼리 오셨죠?”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되면 프라이버시 침해다. 종업원이 말 한마디 친한 척 잘못했다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데, 왜 그런 얘길 할까?손님이 식당의 특정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는 순간, 그 테이블과 주변 공간은 손님의 '사적 영역'이다. 서빙 직원이 대화에 끼어들거나 주인이 과도하게 친한 척 하는 것은 '손님의 영역을 무단 침범하는 행위'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끔 착각하는 게 있다. ‘친한 단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거나, ‘친한 척 또는 말을 걸어주면 손님이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이다.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정중한 무관심 (Civil Inattention)’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제시한 개념이다. '상대방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해 고의로 시선을 거두거나 모르는 척해주는 배려'라고 한다. 물론 자신을 알아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점포는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얘기이고, 아주 오래된 가게의 경우다. 요즘 “낄끼빠빠“라는 말이 유행한다.”낄 때 즉 껴야 할 땐 과감히 끼어들고, 빠져야 할 땐, 확실히 빠지라“는 방송 연예 프로그램용 은어다.마찬가지로 손님의 성향에 따라 아는 척하는 게 좋은지 모르는 척 하는 게 좋은지, 잘 판단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알아도 모르는 척해주는 게 현대사회의 기본 예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신문에서 TV편성표가 사라지고 있다
신문에서 TV편성표가 사라지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적, 추석이나 설 연휴엔 신문에 TV특집편성표가 별도로 있었다. 그러면 빨간 펜으로 보고 싶은 프로그램에 동그라미를 쳤다. 주로 ‘특선 영화’가 인기였다. TV 편성표는 신문 맨 뒷면에 있었다. 그러다가 케이블TV가 생기자 편성표는 한 면을 모두 차지하게 되면서, 내지로 옮겨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은 TV를 보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신문 보는 사람 역시 크게 줄었다. 또한 플랫폼에서 편성표를 불 수 있기 때문에, 편성표를 보려고 굳이 신문을 펼칠 필요도 없어졌다. 신문 광고도 크게 줄면서 신문 지면도 줄었다. TV 편성표를 비싼 지면에 굳이 실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신문 지면의 터줏대감이었던 TV 편성표가 미디어 환경 변화(OTT, 유튜브 중심)와 종이 신문 제작비용 부담으로 인해 빠르게 퇴장하고 있다.경향신문, 한국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세계일보, 국민일보 등 6개사는 지면에서 TV 편성표를 완전히 제외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4개사는 아직 편성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들 역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종편) 위주로 대폭 축소해 게재한다. 해외 언론들은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미국 최고의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이미 2020년 9월을 기점으로 81년간 이어오던 지면 TV 편성표를 전면 폐지했다. 사실 신문사들은 수년 전부터 편성표 폐지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검색이 서툰 골수 고령층 독자들의 항의와 절독 협박이 워낙 거세어, '폐지했다가 슬그머니 다시 부활시키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2026년 현재는 고령층마저 유튜브나 스마트TV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신문사들이 마침내 완전히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마 고령층 독자가 많은 보수 신문 4개사만 아직 편성표를 유지하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 TV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문신을 왜 해서...
문신을 왜 해서... 필자는 자식들에게 ‘젊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몇 가지 얘기했는데, 그중 하나가 문신이다. 이유는 ‘되돌릴 수 없어서(어려워서)’다. 요즘 젊은이들은 문신을 자기 표현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생기며, 유행처럼 문신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젠 문신도 합법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심리적 또는 관행적인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 가수 슬리피(Sleepy)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슬리피맞아요)을 통해 양팔과 손가락 등에 새겨진 문신을 지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결혼 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얻은 소중한 두 아이(1남 1녀)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데, '저 애 아빠 문신 봐' 하는 따가운 시선이 있어, 문신 때문에 어린이집 가는 게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안 좋은 걸’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이 대목에서 ‘본인이 생각해도 안 좋은 걸, 왜 그렇게 많이 했을까’ 싶다. 문신을 지우는 피부과 전문의가 “여성들이 문신을 지우기 위해 병원을 찾는 때가 언제일까?”라는 질문을 했다.흔히 ‘결혼할 때’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실제 가장 많은 경우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유치원) 갈 때’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가수 슬리피와 같은 이유다. 아이의 친구들이나 다른 학부모들이 "OO이 엄마 문신했네"라며 선입견을 품고 볼까 봐 지우겠다는 것이다. 역시 아이들이 관계되면, 부모는 약해진다. 학생 때 호기로 문신을 했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승무원, 호텔리어, 공무원, 교사, 금융권 등 대면 서비스나 신뢰감이 중요한 직업군을 준비하는 경우, 문신은 면접에서 감점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경찰의 경우 문신이 있으면 그 자체로 탈락이다.또한 나이 들어 비즈니스 할 때, 문신은 상대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 다. 가장 ‘미련한’ 문신은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경우다. 즉 ‘철없던’ 젊은 시절 연인과 함께 새겼던 '커플 타투'나 이니셜 같은 것들이다. 시간이 흐른 뒤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미련하게도 한 사람과 영원할 걸로 착각했다가, 지우는 고통을 느끼며 인생의 교훈도 얻게 된다. 문신은 새길 때보다 지울 때가 10배는 더 아프고,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 한 번에 안 되고 여러 번에 걸쳐 시술하는 경우가 많고, 색깔 문신은 흑백보다 2~3배 더 힘들고 비용도 더 든다. 특히 여성들은 피부가 약해 더더욱 고생이라고 한다.또한 100%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서, 미세한 자국이라도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애초에 문신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최고였다!
세종 시대 과학은 세계 최고였다! 조선 시대에 일식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왕이 정치를 잘못해서 하늘이 내리는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일식이 예보되면 왕은 소복을 입고 궁궐 마당에서 해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구식례(救食禮)라는 중대한 국가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러던 세종 4년(1422년) 1월 1일(음력), 신하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뜻깊은 날에 일식이 예보되었다. 세종은 예법에 따라 소복을 갈아입고 마당에 엎드려 경건하게 일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보된 시간이 되어도 해가 멀쩡했다. 결국 일식은 천문 기관인 서운관이 예보한 시간보다 1각(약 14.4분)이 늦게 시작되었다. 임금이 차가운 마당에서 옷을 갖춰 입고 15분 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서 있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왕의 권위에 금이 간 이 사건으로 인해 일식 예보를 담당했던 관리 이천봉은 태형(곤장)을 맞았다. 그러면 왜 14.4분이 틀렸을까? (필자는 그 정도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이 오차는 천문 관리의 단순한 계산 실수가 아니라, 당시 조선이 중국 명나라의 달력인 '대통력'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명나라의 달력은 중국의 수도(당시 남경/북경)를 기준으로 계산된 것이지만, 한양(서울)은 중국보다 동쪽에 치우쳐 있어 천문 현상이 발생하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종 14년에도 일식 오보 사건이 한 번 더 발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의 농사가 최우선이었던 시절이라,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맞는 역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중국의 역법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달력을 만드는 것은 ‘자주 독립’으로 비춰지며, 중국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험한 정치적 행위였다. 하지만 세종은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1444년 이순지·김담 등의 천재 과학자들과 함께 마침내 조선 고유의 역법서인 《칠정산》을 완성했다.실제로 《칠정산》을 완성한 후인 세종 29년(1447년) 음력 8월 1일에 일식이 또 있었는데, 이때는 일식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을 단 1분 내외의 오차로 완벽하게 예측해 냈다.(망원경도 없던 시절에 일식을 도대체 어떻게 미리 예측했을까?) 당시 전 세계에서 자기 나라 수도를 기준으로 해, 달, 5개 행성(목성·화성·토성·금성·수성)의 움직임을 이 정도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던 나라는 조선, 중국, 아라비아 세 곳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울러 세종대왕이 신하를 시켜 ‘일 년의 길이’를 쟀다. "1년은 365.2425일"이라고 계산했다. 현대 과학으로 정한 지금의 일 년과 비교하면, 불과 0.0004일 차이라고 한다. 당시 최고의 정확성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칠정산 내외편’이 대충 천문학과 관련되었다고만 배웠지만, 이렇게 대단한 업적인 줄은 몰랐다.《칠정산 내편》은 기존 동양의 역법을 철저히 한양의 위도와 경도에 맞춰 재계산했다. 반면 《칠정산 외편》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던 아라비아의 천문학을 도입해, 고등 기하학과 삼각함수(구면삼각법)로 행성의 궤도를 풀어냈다. 헐~ 말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워 진다. 정확한 수식을 만들려면 정밀한 데이터가 필수다. 경복궁에 세워진 거대 천문대 '간의대'에서는 15세기형 조준경이라 할 수 있는 간의(簡儀)와 혼천의(渾天儀)를 통해 매일 밤 별들의 좌표를 분(?) 단위로 측정했다. 또한 거대한 자의 원리를 이용한 규표(圭表)로 태양 그림자의 길이를 밀리미터(?) 단위로 계측하여 24절기를 정확히 잡아냈다. 장영실이 만든 자동 물시계 자격루는 관측 데이터에 오차 없는 표준시 역할을 했다. 15세기 유럽이 달력의 오차를 잡지 못해 쩔쩔매다 1582년이 되어서야 겨우 개정한 '그레고리력'의 핵심 수치를, 조선은 이미 138년 전인 1444년에 완성해 사용하고 있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업적이다.우리 과학이 유럽과 중국을 훨씬 앞섰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하지만 이랬던 조선이 나중에 갈수록 망가졌다는데 대해 한심함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
남미 교과서에서의 한국
남미 교과서에서의 한국 필자가 어릴 적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다. 김찬삼 교수는 1958년부터 시작해 1970년대 말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를 여행한 한국 최초의 전문 여행가다. 그의 세계여행기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발간되었는데, 갈수록 두껍고 화려하고(흑백에서 컬러로 발전) 고급스러워졌다. (사진) 인기도 많아 웬만한 집에도 꽂혀 있을 정도였다. 당시엔 해외 여행을 꿈도 못 꾸고 외국에 대한 자료나 정보도 크게 부족했던 시절이라, <김찬삼 세계여행>은 어린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외국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김찬삼 교수가 해외여행을 시작한 1960년대 전후만 해도,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고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돈 없는 여행자의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김찬삼 교수가 생소했던 남미를 처음 방문한 시기가 1961년이다. 당시 에콰도르나 페루, 칠레의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나라 자체를 몰랐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스파이 아니냐", "밀항자 아니냐"며 몇 시간씩 독방에 갇혀 취조당했다. 심지어 한국 여권을 처음 본 현지 관리들이 여권을 가짜라고 무시하며 집어던지거나, 입국을 거절해 국경 근처 뙤약볕 아래서 며칠씩 노숙하며 사정해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에콰도르나 페루의 도심을 걸을 때면 현지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몰려와 동양인을 비하하며 놀리거나, 심지어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다. 칠레 등지에서 밤에 너무 춥고 배가 고파 민가의 문을 두드리며 "마당에서 잠만 자게 해달라", "물을 좀 달라"고 청했을 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문을 쾅 닫아버리거나 개를 풀어 쫓아내는 서러운 홀대를 수없이 겪었다. 그런데 지금의 남미는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한국인을 너무나 사랑하게 바뀌었다.심지어 에콰도르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이 대대적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도합 14개 교과서에 한국의 발전상이 상세히 담겨 있다고 한다. 특히 직지에 대해선 무려 12페이지에 걸쳐 아주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교과서에는 직지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 세계 최초의 서적, 2001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약 80년 앞서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를 발명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보다 더 자세하다!)이외에도 9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한국이 1945년 식민지배 종식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엄청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또한 세계 수소차 판매량 1위(현대자동차), 전국을 2시간대로 연결하는 고속열차(KTX), 5G 스마트폰의 대중화(삼성전자), KAIST의 인공지능 로봇 연구 등이 과학·물리 교과서에 예시로 쓰인다. 나아가 한국의 영화나 유명 생존 게임(배틀그라운드 등)을 통한 문화적 영향력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실 남미에선 정도의 차이일 뿐, 공통적 현상이다.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먼저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인 만큼, 교과서 속 한국은 '경제적 파트너'이자 '선진 도시'로 등장한다. 특히 칠레 지리 교과서 내 세계지도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 대신 '동해(Mar del Este)'가 단독 또는 병기하는 성과를 거뒀다.페루의 교과서에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가 오직 '인적 자원(교육)'과 '수출 주도형 산업'만으로 어떻게 글로벌 IT·자동차 강국이 되었는지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텍스트와 도표가 실려 있다. 이렇게 남미의 교육계에서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교육과 기술 발전을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을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로 보고 있다. 김찬삼 교수가 홀대받으며 눈물 흘리던 시기로부터 60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2003년 작고)감격스럽다.대한민국 만세다. <묻는다일보 발행인 배재탁 ybjy0906@naver.com>